[샛강에서] AI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남으려면

입력 2025-11-27 00:37

“예전엔 시대별로 사양산업이 따로 있었잖아요.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모든 산업이 사양산업이 됐네요.”

최근 출판계 인사 등 출입처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교수가 한 말이다. 종이신문과 책이란 매체에서 일하는 이들이 모인 자리라 ‘우린 사양산업 종사자’란 말이 나왔는데, 이 자조적 농담에 ‘지금은 다 사양산업’이라는 진지한 응수가 나온 것이다. 너나없이 밥벌이를 걱정하는 시대라니. 그야말로 AI가 만든 평등하고도 오싹한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챗GPT를 위시한 AI는 여러 방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다. 이미 2년여 전엔 AI가 미국 의사 면허시험과 로스쿨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글쓰기와 작곡, 그림 등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엔 AI 컨트리 가수 브레이킹 러스트의 곡 ‘워크 마이 워크’가 미국 빌보드 컨트리 부문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모든 방면에서 인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AI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간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AI 고도화를 인위적으로 억제해야 할까. 허나 이런 규제 정책의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인류 역사상 기술의 진보를 거스른 운동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했다. 19세기 일군의 영국 직물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운동’이 대표적이다.

AI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도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얼마 전 대학가를 뒤흔든 ‘AI 부정행위’ 사태를 달리 말하면 그만큼 AI 활용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적잖다는 의미도 된다. AI를 부정행위에 악용한 이들에게 챗GPT는 아마 요정 지니가 담긴 요술램프였을 것이다. 문제만 입력하면 술술 답이 나오고, 노력 없이도 좋은 점수가 나왔으니까.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이 흐름을 받아들여 바르게 사용하는 편이 현명할 터다. 이를 위해선 효율성을 따지는 기계로선 선택하기 힘든 인간만의 고유 가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진실과 양심, 선과 신뢰 등의 가치 말이다. AI도 결국 도구일 따름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선하게 쓰일 수도, 악한 일에 일조할 수도 있다.

기독교는 인류 문명사에서 인간다운 사상과 가치관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태초에 인권이 있었다’(IVP) 저자 민경구 에스라성경대학원대 구약학 교수는 “유엔 세계인권선언 30개 조항 가운데 22개가 신명기 내용과 연관돼 있다”며 “이는 성서 규정이 오늘날 보편적 인권 개념으로 수용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정일치 군주제와 노예제가 널리 인정되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종이나 과부, 고아와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내용이 창세기 등 구약성경에 여럿 언급돼서다. 이러한 정신은 로마제국 치하 초대교회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들 사례를 보건대 세상에 사랑과 진실, 인간다움을 지키고 전파하는 데 교회만큼 능숙한 곳은 드물 것이다. 기원전부터 그랬듯 향후 AI 시대에도 교회뿐 아니라 기독 대학과 출판사 등 각 분야 기독 단체가 이들 가치를 지키고 전수하는 데 앞장서길 기대한다. 세계적 기독 베스트셀러 저자 팀 켈러 미국 리디머장로교회 설립 목사가 그의 책 ‘팀 켈러의 일과 영성’(두란노)에서 “중세 시대 수도원이 고전문학 작품을 지켜냈듯 앞으로 수십 년 내 기독교계 대학이 인간성을 보존하고 재발견하는 중심 세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처럼 말이다.

AI가 우리에게 인간의 쓸모를 고민하게 만든다면, 기독교는 창조주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대체 불가능성을 일깨운다. 21세기인 지금도 파격으로 다가오는 이 진리는 AI 시대를 맞아 또 한 번 길을 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