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연패면 어떠리… 다문화母 농구엔 하나님 사랑·행복이 있다

입력 2025-11-26 03:01
다문화 어머니 농구팀 ‘포위드투 글로벌 마더스’ 선수들과 천수길 감독이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제26회 용산구청장배 농구대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삐익!”

농구 4쿼터 종료를 알리는 버저와 함께 심판의 호각이 울려 퍼졌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 원효로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제26회 용산구청장배 농구대회’에서 다문화 어머니 농구단 ‘포위드투 글로벌 마더스’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숙명여대 ‘배숙켓볼’ 팀에 29대 11로 패한 뒤 코트를 나서는 선수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동안 팀을 이끈 천수길(64) 감독은 고개 숙인 선수들 곁으로 다가가 “오늘 정말 잘 싸웠다. 용기 잃지 말고 더 열심히 연습해 보자”고 따뜻하게 다독였다.

포위드투 글로벌 마더스는 팀명 그대로 한국 러시아 캄보디아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뉴질랜드 등 14개국 출신 다문화 어머니 25명이 모인 특별한 팀이다.

다문화 어린이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의 감독이기도 한 천 감독이 아이들 어머니들에게 농구를 권한 게 모임의 시작이었다. 천 감독은 “2023년 어머니들에게 보호자로만 오지 말고 ‘직접 뛰어보라’고 권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낯선 나라에서 농구를 통해 모이면서 어머니들도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모였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다른 차원이었다. 처음 농구공을 잡아본 엄마들의 첫 훈련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드리블은 좀처럼 손에 익지 않았고 레이업 슛은 공중에서 방향을 잃기 일쑤였다. 공만 잡으면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 바빴다. 그래도 매주 목요일 모여 꾸준히 훈련했다. 서로의 실수에 웃어주고 격려하며 코트에 서서히 적응해 갔다.

16일 대회에서 숙명여대 ‘배숙켓볼’ 팀과 경기하는 모습.

어머니 농구 모임이 지난해 정식 팀으로 출범하게 된 건 더 큰 뜻이 보태진 결과였다. 천 감독과 어머니들의 훈련 과정을 지켜본 미국의 비영리 크리스천 재단 포위드투재단(총괄디렉터 이상진)이 공식 후원을 약속한 것이다. 포위드투재단은 이상진(48·부에나팍교회) 집사가 ‘소년범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종호 판사와 함께 한국 보호관찰 청소년을 미국에 초청한 일을 계기로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크리스천들의 후원으로 여행 경험이 부족한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과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여행 기회를 제공한다.

이 집사는 개인적 인연이 있던 천 감독을 통해 다문화 어머니 농구팀을 알게 된 이후 계속 마음이 갔다고 했다. 미국의 이민자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25일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정착해 살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에서 해오던 문화재단 일과 강연 활동이 모두 멈추자 결국 이민 가방 두 개만 들고 유목민처럼 미국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민자 지원 정책도 잘 마련돼 있고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어 다문화가정이란 개념조차 없다”면서 “한국은 이제 제도적 지원은 많이 생겼지만 정서적 돌봄은 더 필요한 시점이다. 어머니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기에 후원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재단은 현재 어머니 농구팀 1년 운영비를 전액 후원하고 있다. 창단 이후 성적은 8전 8패지만 후원은 이어질 예정이다. 이 집사는 “경기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 과정이 더 중요하다”며 “첫 승을 하면 동남아, 우승하면 미국으로 보내주겠다. 다문화 어머니들이 꼭 한 번 NBA 경기를 직접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기대를 전했다. 팀 활동을 통해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기도하는 부분이다. 이 집사는 “어머니 중 한 분이 ‘일주일에 한 번 농구하는 시간이 있어서 버틴다’고 말한 것을 듣고 감사와 책임을 느꼈다”며 “무엇보다 다양한 인종이 함께 뛰는 이 팀에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들길 늘 기도한다”고 말했다.

실제 선수들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일본인 하야시 리에(35)씨는 “농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공 하나로 마음을 나누며 함께 뛸 수 있어 감사하다”면서 “이 경험이 낯선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자신감을 준다”며 웃었다.

주장 김유연(43)씨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서로를 돌보며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임을 만들어주신 재단에 감사드린다”며 “선수들의 기량이 계속 좋아지고 있으니 내년에는 꼭 1승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