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당 1분47초인데 ‘칸트’ 풀라는 국어

입력 2025-11-25 18:50 수정 2025-11-25 18:53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 국어가 수험생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문항 수와 시험 시간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상위권 변별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국어 대신 부담이 덜한 한국사를 1교시로 바꾸는 등 시험 운영의 유연성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5일 교육계에서는 수능이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시험한다’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어 영역 시험 설계 자체가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1교시 국어는 오전 8시40분에 시작해 80분 동안 시험을 치른다. 주어진 문항은 45개다. 한 문항당 허용한 시간이 1분47초다. 정답을 마킹하고 가채점을 위한 메모 시간까지 고려하면 1분40초 남짓이다. 올해 국어는 16페이지로 구성됐다. 한 페이지를 풀고 넘기는 데 5분을 넘기면 안 된다.

수험생들은 주어진 시간에 난해한 문장을 기계적으로 해독해야 한다. “칸트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동일성을 의식하는 것은 인격이다’와 ‘영혼이 자기의식을 한다’라는 두 전제 모두 납득하는 것으로 보지만….” 임마누엘 칸트의 인격 동일성을 다룬 올해 수능 국어 14~17번 지문 일부다. 이런 문장이 22개 이어져 있다. 포항공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충형 교수는 지문 이해에만 20분 걸렸다고 말했다.

현 대입 체제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이 40%를 넘는 상황에서 상위권을 변별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섣불리 수능을 쉽게 냈다가 한 문항 실수로 등급이 갈리는 등 혼란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국어 시험 자체의 부담을 줄이기 어렵다면 1교시를 한국사로 바꿔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여주자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국어 시험을 망쳐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으면 이후 시험에도 지장을 준다. 정신력 테스트가 목적이 아닌 시험이므로 최대한 많은 수험생이 실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하자는 취지다.

또 현재는 4교시에 한국사와 탐구 영역을 몰아서 본다. 한국사를 1교시로 옮겨 4교시가 단순해지면 응시 순서 규정을 어겨 부정행위 처분을 받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사가 1교시가 되면 일반 수험생의 1.7배 시간을 주는 중증 장애 수험생의 점심시간과 시험 종료 시간이 너무 늦어진다”며 반대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시험 순서 조정을 교육 당국 입장에서 예단하지 말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