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에 등장해온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은 어려운 문제 몇 개로 손쉽게 상위권을 변별하려는 행정편의주의의 산물이다. 킬러문항 출제 관행은 사회적 비판을 받을 때마다 모습과 형태를 바꿔가며 수험생을 골탕먹여 왔다. 하지만 2024학년도 이후 킬러문항은 없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올해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려운 문항이 출제됐다. 킬러문항으로 수능 난이도가 출렁일 때마다 그 혜택은 사교육 몫이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5일 “지난 13일 치러진 2026학년도 수능에서 킬러문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2024학년도 수능을 앞두고 교육부는 킬러문항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그때도 교육부는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문항은 지난 30년 수능 역사에서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킬러문항이 있다고 규정하자 교육부는 지난 3년간 출제한 킬러문항 22개를 공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반성문’을 작성했다.
이후에도 킬러문항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매년 킬러문항을 분석해온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4학년도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최소 6개 나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험생들이 시험 직후 킬러문항이라고 지목했던 수학 22번은 “대학 과정인 함수방정식에 준하는 부등식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영어에서도 킬러문항이 근절됐다고 보기 어렵다. 교육부는 2024학년도 킬러문항 논란 당시 영어 출제에 대해 ‘철학처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들어내 내용 파악을 어렵지 않게 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올해 수능 영어 34번은 이 방침과 거리가 멀었다. 34번은 임마누엘 칸트와 토머스 홉스의 법철학을 다뤘다. 법을 강하게 옹호하는 칸트의 주장을 이해해야 정답을 고를 수 있다. 어휘가 어렵고 문장 수준이 높고 해석을 해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인 지문이어서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악마의 문항’이란 토로가 나왔다.
킬러문항과 사교육은 공생 관계다. 사교육이 킬러문항을 분석해 수험생에게 요령을 가르치면 출제 당국은 난도를 살짝 낮춘 문항 수를 늘려 시간 압박을 가하거나 수험생을 헷갈리게 하는 함정을 파 변별력을 유지했다. 5지선다형 수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주장이 교육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킬러문항의 수준에 따라 수능 난이도는 냉온탕을 오가며 입시 현장의 불확실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수능 국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 만점)을 보면 2022학년도에 149점으로 매우 어려웠다. 표준점수는 수험생이 받은 원점수가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어려울수록 높아진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2023학년도에 134점으로 뚝 떨어졌다가 이듬해 150점으로 다시 치솟았다. 2025학년도에 139점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어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어서 140점대 중후반대로 예상된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