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떨리는 비만약시장… 시총 1조 달러 제약사 나왔다

입력 2025-11-26 02:12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제약업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 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제약사 최초로 이름을 올리면서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차세대 게임체인저로 떠오른 ‘먹는 비만약’에 대한 기대감이 릴리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 주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장중 1066.65달러까지 상승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주가 상승률은 약 35%다. 같은 기간 S&P500지수 상승률(약 8%)의 4배를 웃돈다. 이는 제약기업 최초이자 비(非)기술기업 중에서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다. 미국 의학전문지 바이오스페이스는 “릴리의 시총은 BMS, GSK, 머크, 사노피, 노보 노디스크, 화이자 등 6개 글로벌 제약사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친 규모”라며 “제약산업의 주도권이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릴리를 1조 달러 기업으로 이끈 핵심 동력은 단연 비만 치료제 시장이다. 대표적인 비만·당뇨 치료제 ‘마운자로’(미국명 젭바운드)는 미국 신규 환자 시장에서 70~7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잘 키운 신약 하나가 시장을 흔든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단일 제품이 기업의 체급을 바꿔놓은 사례로 꼽힌다.

릴리는 위고비 공급 부족으로 시장에 공백이 생긴 사이 생산·공급망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마운자로는 무엇보다 GIP(위 억제 펩타이드)·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에 모두 작용하는 이중작용제라는 점에서, GLP-1 단일작용제인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차별화에 성공했다.

동시에 ‘먹는 비만약’ 오포글리프론 개발에도 속도를 내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오포글리프론은 세계 최초의 경구용(먹는 약)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기존 주사형 치료제가 가진 투약 불편성과 접근성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회사는 내년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비만 및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받길 기대 중이다.


업계는 마운자로·젭바운드·오포글리프론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비만약 삼총사’가 향후 글로벌 매출 1010억 달러(약 135조원) 이상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GLP-1 계열 치료제는 이미 판매 신기록을 만들고 있으며, 오포글리프론은 기존 주사제가 개척한 시장을 그대로 흡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체중 감량을 넘어 당뇨, 지방간, 심혈관 질환, 수면무호흡증 등 다양한 만성질환 치료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주요 제약사들과 함께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공공보험 적용과 가격 인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보험 등재 논의가 본격화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국내 제약사들도 ‘먹는 비만약’ 경쟁에 뛰어들었다. 일동제약이 개발 중인 알약 비만약 후보물질은 임상 1상에서 약 10%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이며 국내 기업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아에스티 자회사 메타비아 역시 임상 1상에서 평균 6% 감량 효과를 확인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한미약품은 체중 감량뿐 아니라 근육량 증가 효과까지 결합한 ‘복합형 비만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며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종근당과 셀트리온 또한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최근 온라인 간담회서 “현재까지 개발 중인 비만 치료제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GLP-1을 포함한 2중, 3중 작용제가 주류인데 우리는 이를 넘어 4중 타깃에 동시 작용하는 경구형 모델로 개발하고 있다”면서 “4중 작용제 체중 감소율은 약 25%가 될 것으로 본다. 근육 감소 같은 부작용을 줄이는 치료제로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