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24시간 시대가 던지는 질문

입력 2025-11-26 00:35

24시간 시대의 예광탄이 쏘아올려진 것은 1982년이었다. 해방 후부터 그때까지 한국인에게 야심한 밤은 금단의 시간이었다. 야간통행금지제도(통금) 탓에 이슥한 밤의 시공간을 마음껏 즐기며 ‘올나이트’를 할 수 있는 날은 크리스마스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뿐이었다. 하지만 82년 1월 5일 자정을 기해 통금이 사라지면서 한국인의 낮과 밤은 비로소 이음매 없이 이어지게 됐다. 당시 통금 해제의 끌차 역할을 했던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었는데, 군부독재 정권은 세계인들이 모일 지구촌 이벤트를 앞두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누르는 통금은 없애야 했다. 그래야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을 ‘정상 국가’로 선전할 수 있으니까. 현재 한국인이 느끼는 ‘시간성’의 뿌리가 80년대에 닿아 있음을 지적한 ‘24시간 시대의 탄생’이라는 책에는 통금 해제를 비롯해 이즈음부터 달라진 한국인의 삶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다. 통금이 사라지자 24시간 가동되기 시작한 공장들, 2교대·3교대 근무 시스템의 유행, 불티나게 팔려나간 박카스와 우루사….

90년대에는 전국 곳곳에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편의점은 ‘도시의 등대’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낮잡아 부르는 ‘편순이’와 ‘편돌이’는 등대지기 역할을 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던 사람들은 한밤중에도 그곳을 찾아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93년엔 ‘사우나+숙박시설’ 형태를 띤 현대식 찜질방이 부산에 처음 문을 열었고, 90년대 말엔 밤새 게임을 즐기는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 밖에도 90년대엔 수많은 형태의 업소가 24시간 운영에 뛰어들었다. 카페, 쇼핑몰, 패스트푸드 체인점…. 해외여행 정보 사이트인 CNN GO는 2011년 ‘서울이 세계 도시 중 최고인 5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울의 불야성을 소개하며 이렇게 적기도 했다. “(서울에서) 밤에 잠을 자는 것은 루저들이나 하는 일이다.”

24시간 시대의 마지막 퍼즐은 새벽배송 서비스였다. 퇴근한 뒤 소파에 앉아서, 혹은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것을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온갖 신선식품을 받아볼 수 있는 이 서비스 덕분에 한국인에겐 장보기마저도 낮밤의 경계를 뛰어넘게 됐다. 2015년 마켓컬리가 열어젖힌 새벽배송 시장은 쿠팡을 비롯한 이름난 유통업체들이 대부분 가세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는데,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5년 4000억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1조8000억원으로 9년 사이에 30배 가까이 커졌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대한민국의 24시간 시대는 완성됐다. 그러니 최근 제기되는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얼마쯤 허무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30여년간 면면히 이어진, 24시간 시대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 한국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해결이 난망한 문제라고 해서 그것을 둘러싼 논의까지 의미를 잃는 건 아닐 것이다. 새벽배송 논쟁은 야간 노동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야간 노동은 국제 사회가 규정한 발암 물질이다), 새벽배송 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며(물류는 노동 형태가 단순해 기술이 없거나 경력이 단절된 이가 뛰어드는 분야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24시간 시대를 좇았던가 자문하게 만든다. 24시간 시대가 선사하는 편리함을 누리는 상황의 밑받침엔 건강을 담보로 자신의 삶을 갈아넣는 노동자가 있다. 한국의 노동 현실을 전하는 자료들을 살피다가 10년 전 출간된 한 책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과거 미국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던진 질문, “우리는 왜 이것을 견디고 있는가”를 비튼 그 책의 제목은 이랬다.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