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가 이번 주 상속세 관련 개정안 22건에 관한 심사에 돌입한다. 한국은 ‘유산세’ 체계에서 배우자 상속세까지 매기는 유일한 나라로, 상속세 전반을 다시 짜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져 왔다. 국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여당은 공제 범위 확대, 야당은 최고세율 인하와 배우자 상속 폐지를 중심으로 개편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에는 공제 현실화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속세 기본 골격부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은 상속 재산 전체에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가운데 한국·미국·영국·덴마크만 이 방식을 쓰고 있다. 나머지 20개국은 상속인이 실제 받은 몫에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를 따른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유산세 체계가 애초에 합리적 논의 과정을 거쳐 도입된 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조선총독부 시절 눈에 보이는 재산에 세금을 매기기 쉬웠던 관성과 광복 직후 정부 재원을 확보해야 했던 상황이 결합된 전근대적 제도의 흔적”이라며 “영국 왕정에서 귀족의 영지 전체에 세금을 매기던 과세 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현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표구간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한국은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20%, 5억~10억원 30%, 10억~30억원 40%, 30억원 초과분은 50%로 5단계 초과누진세율 구조를 따른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는 “자산가격 급등과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상속세 대상이 과거 피상속인 기준 상위 1~2%에서 현재 약 7% 수준까지 확대됐다”며 “과표구간 역시 1990년대 말 도입 이후 손질되지 않아 누진 구조가 과도하다”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의 왜곡도 문제로 꼽힌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배우자 포함)이 승계하면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 달리 가업이 아닌 업종까지 형식적으로 요건을 맞춰 ‘재산 이전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 교수는 “가업도 아닌데 가업으로 포장해 공제를 받으려는 구조가 생겨 애먼 빵집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배우자 상속세도 ‘1세대 1회’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꾸준히 쟁점화됐다. 김 교수는 “부부가 공동으로 재산을 형성해 온 점을 고려하면 배우자에게 ‘무상취득’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고, 같은 세대에 세금이 두 번 부과되는 결과를 낳는다”며 “국제 흐름을 봐도 조정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산세 체계를 따르는 3개국 모두 배우자는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 데다 완충 장치가 있어 한국보다 조세 부담이 덜하다는 평가다. 미국의 경우 연방 상속세 면제 한도가 1399만 달러(약 205억원)로 실질 과세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다. 트럼프정부 2기 들어서는 이 한도를 1500만 달러로 올리는 안도 추진 중이다. 영국도 기본 무세 구간을 둬 부부 기준으로는 최대 100만 파운드(약 19억원)까지 상속세를 물지 않는다. 덴마크는 최고세율이 15%로 낮으며 전체 세수 중 상속세와 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0.5% 내외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