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산 공세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으로 인한 실적 악화 속에서도 꾸준히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선점해야 활로를 찾고 중국의 벽도 넘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일보가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이들 배터리 3사의 매출 대비 R&D 투자액 비중은 증가세를 보였다. 3사 중 R&D 투자액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SDI로 2023년부터 3년 연속 1조원을 넘겼다. 삼성SDI는 2023년 1조1364억원이던 R&D 투자액을 지난해 1조2796억원으로 1432억원 증액했다. 올해도 3분기까지 1조1015억원을 R&D에 투입했다. 전체 매출 대비 R&D 투자액 비중은 2023년 5%에서 지난해 7.8%로 올랐고 올해는 11.7%까지 급증했다. 이 기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세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삼성SDI가 2027년 전고체배터리 양산 목표를 공식화한 것과 한 번 투자를 시작하면 뚝심으로 밀고 가는 삼성 특유의 투자 문화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재 리튬이온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안전성이나 에너지 밀도 등을 대폭 높인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삼성SDI는 디스플레이용 전자 소재 등에 대한 R&D도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매년 1조원 이상 R&D 투자를 이어가며 기술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R&D 투자 규모는 오히려 전년 1조374억원에서 1조882억원으로 소폭 늘렸다. 올해도 3분기까지 누적 R&D 투자액이 9876억원에 달한다. 매출 대비 R&D 투자액 비중도 2023년 3.1%에서 올해 5.6%로 확대 추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저가 시장에서 차세대 기술로 부상하는 리튬망간리치(LME)배터리와 배터리 제조 공정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건식전극공정 관련 기술 개발 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SK온의 경우 지난해 R&D 투자액이 2770억원으로 전년(3007억원) 대비 투자 규모는 다소 감소했지만, 배터리 사업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3%에서 4.4%로 거의 두 배 늘렸다. 영업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올해 R&D 투자를 지난해보다 확대하기로 하고, 주력 제품인 파우치에 액침냉각 기술을 접목해 안전성을 높인 TP솔루션과 반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CATL 등 중국 업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며 “다른 비용은 줄이더라도 R&D 투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