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비상걸린 내수기업… “10원 차이로 수십억·수조 손실”

입력 2025-11-25 02:08

내수 비중이 높은 한 제조업체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준비하면서 ‘10원 단위 전략’을 세우고 있다. 환율에 따라 목표 이익 수준, 원재료 구매 시점과 규모, 마케팅 등의 비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헤지(hedge·위험회피) 전략을 짜고 있지만 목표 실적과 비용 절감도 동반될 수밖에 없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가만히 앉아서 수십억, 수백억원의 손해가 예상되는데 기업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고환율 압박이 거세다. 핵심 원재료를 수입하고 내수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비상 상황이다. 24일 서울외국환거래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5원 오른 1477.1원(오후 3시30분)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월 9일(1484.1원) 이후 7개월 반 만에 최고치다. 1470원대가 장기화해 ‘환율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정하더라도 환율 10원에 수십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기까지 재무 부담을 안게 된다.


항공업계는 특히 부담이 크다. 달러로 비용을 결제하고 대규모 투자 또한 달러 기반이라 환율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항공유, 항공기 리스료, 항공기 구매 등 핵심 비용이 달러로 결제돼 환율 상승은 원가 압박으로 직결된다. 대한항공은 올 3분기 기준 약 48억 달러의 순외화부채를 보유하고 있어 환율이 10원만 올라도 약 480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한다.

대한항공이 향후 추진하는 대규모 투자 역시 대부분 달러 기반이다. 미국 보잉사와 362억 달러(약 53조4000억원), GE에어로스페이스와 약 136억 달러(약 20조원) 규모 계약을 추진 중이다. 환율이 오르면 곧바로 수조원대 재무 부담이 추가된다. 대한항공은 재무본부뿐 아니라 전사 차원에서 실시간으로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중이다.

건설 부동산 및 건자재 업계도 고환율에 긴장하고 있다. 수입하는 자재는 1년 단위 계약이 많아 당장은 큰 타격이 없지만, 고환율이 길어지면 공사비 인상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연간 단위 계약이라 해도 아주 먼 훗날도 아니다. 내년 상반기에 고환율 상태로 1년 계약을 하면 1년 내내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장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입찰 지침서에 ‘마이너스 옵션’을 기재하는 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업계도 고심이 깊다. 원재료를 100% 수입하는 동서식품은 구매 시점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아 직격타를 받고 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원두는 미리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수확하는 시점마다 물건이 나오고 그때 결제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환율이 1300원대에서 1500원을 바라보는 지금 매우 힘든 상황이다. 200원만 올라도 15%의 원가 부담이 더 생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CJ제일제당, 농심, 삼양, 대상, 오뚜기 등 주요 식품기업들은 수입 원재료를 3~6개월씩 비축하고 있어서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고환율의 장기화다. 삼양식품처럼 수출 비중이 80%에 이르는 기업도 고환율이 고착화하면 원가 부담이 쌓여 환헤지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바구니 물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단 각종 비용 절감, 공급망 안정으로 사업 체질 강화 등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비축분이 소진되는 시점이 오면 중장기적으로 원가 전략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영 권중혁 이다연 신주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