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육아 먼저” 美 보수여성들 새 바람

입력 2025-11-25 02:13

미국의 젊은 보수 성향 여성들을 중심으로 직업적 성취보다 출산과 육아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고 있다. 젊을 때 일에 전념해 직장에서 자리 잡은 뒤 가정을 꾸린다는 통념을 뒤엎는 변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미국의 젊은 보수 여성들 사이에서 ‘인생의 계절’을 재배치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계절’(seasons)이라는 표현은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저마다 계절이 있다”는 성경 구절에서 따온 말로, 인생의 시기마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커리어가 앞선 ‘계절’이었다면, 지금은 출산과 육아가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WSJ는 보수 활동가 이자벨 브라운(28·사진)을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인플루언서이자 보수 팟캐스트 진행자인 브라운은 지난해 결혼해 1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는 “결혼과 부모가 되는 일을 기다리지 말라”며 “성공을 처음부터 함께 나눌 가족이 있을 때 삶은 더 의미 있어진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이런 메시지를 조직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 9월 암살당한 찰리 커크의 부인 에리카는 남편이 이끌던 보수 청년단체 ‘터닝포인트 USA’를 통해 “가정이 중심이고 아이가 우선”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통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 일반사회조사(GSS)에 따르면 지난해 18~35세 진보 여성의 75%가 무자녀였지만 보수 여성은 약 40%만 아이가 없었다. 연구 책임자 새뮤얼 페리는 “진보층은 무자녀·맞벌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지만 보수층은 아이를 갖는 것을 완전한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WSJ는 육아를 위해 커리어를 잠시 내려놨다가 다시 사회로 복귀한 사례도 소개했다. 케이티 맥팔랜드(74)는 34세 때 국방부 공보 담당직을 그만두고 다섯 아이를 키웠다. 그러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50세 때 일터로 복귀했고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일했다. 보수 여성단체 대표 킴벌리 베그는 “아이들은 ‘마음’뿐 아니라 함께 있는 ‘존재’도 필요로 한다”며 과거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웠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출산·육아 우선에는 당연히 현실적 어려움도 존재한다.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정책 분석가 엠마 워터스(28)는 두 아이를 키우며 원격 근무 중이지만 “모든 여성이 유연 근무를 선택할 수 없고, 외벌이도 많은 가정에서 비현실적”이라며 맞벌이 가정의 육아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를 주장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