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에서
뛰어난 기술로 우승 로봇보다 화제
스마트폰 가격대 휴머노이드 불티
207조원 펀드 등 지원 힘입어 약진
뛰어난 기술로 우승 로봇보다 화제
스마트폰 가격대 휴머노이드 불티
207조원 펀드 등 지원 힘입어 약진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 8월 열린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 1500m 달리기에서 우승 로봇보다 더 화제를 모은 로봇이 있었다. 트랙 첫 바퀴를 돌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졌는데도 완주한 유보터의 ‘싱저타이샨’(Waker Taishan)이다.
2족 보행 로봇이 넘어지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리게 하는 건 고난도 기술이다. 팔이 부러지면 무게 중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도 완주에 성공했다는 것은 회복과 균형을 위한 알고리즘이 탁월했다는 의미다.
산둥성 지난시의 로봇 기업 유보터 본사를 최근 찾았다. 당시 대회에 출전했던 로봇이 한쪽 팔이 없는 채로 전시돼 있었다. 목에는 당시 대회에서 수상한 3개의 메달이 걸려 있었다. 키 136㎝의 이 로봇은 당시 100m 시범경기에서 1등, 400m 계주 본경기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안정적 주행 능력을 보여줬다.
저우통 유보터 부사장은 “달리다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일부 장치에 문제가 생겼지만 남은 구간을 완주할 수 있었다”며 “우리 로봇의 안정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본사에는 유보터가 개발한 ‘로봇개’들도 전시돼 있었다. Y20 모델은 다리에 바퀴를 달고 계단과 비탈길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렸다. Y30 모델은 성인 남성을 등에 태우고도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이 로봇은 열화상 카메라와 유독 가스 감지기 등을 장착해 공장 등 위험 시설의 안전 관리에 투입된다.
2014년 설립된 유보터는 중국에서 최초로 로봇개를 개발한 기업 중 하나다. 유보터가 출시한 로봇개들은 전력선 검사, 응급 구조, 보안 순찰, 과학 연구 및 교육 등에서 활약 중이다.
지난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유보터는 48일 만에 싱저타이샨 1세대 모델을 완성했다. 지난 6월에는 중국의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를 접목해 기술적 완성도를 높인 2세대 모델을 내놨다. 최고 속도가 초속 3.8m인 이 로봇은 걷기, 달리기, 언덕 오르기, 계단 오르기 등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산둥의 명산인 타이샨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주행 시연을 완료함으로써 타이샨을 등반한 첫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저우 부사장은 “유보터는 산둥대와 중국과학원 자동화연구소 출신 과학기술자들이 설립한 회사”라며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단기간에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약 100명으로 석·박사가 75% 이상을 차지한다. 정부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본사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투자금 조달까지 지원했다.
중국은 올해 ‘딥시크 쇼크’를 안겨준 AI에 이어 휴머노이드 로봇과 체화지능(피지컬 AI)에서도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국중앙TV(CCTV)의 새해 특집 쇼 ‘춘완’에선 유니트리의 H1 모델들이 인간 무용수들과 함께 각을 맞춰 군무를 췄다. 베이징에선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려 베이징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의 로봇 ‘톈궁 울트라’가 2시간40분42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8월에 열린 베이징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에선 달리기 외에 격투기,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로봇들이 경쟁을 펼쳤다.
전기차 업체 샤오펑은 지난 5일 ‘AI 데이’ 행사를 열고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이언’ 2세대를 공개했다. 키 178㎝, 몸무게 70㎏으로 인체와 비슷한 데다 82개의 관절을 갖춰 사람과 흡사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허샤오펑 최고경영자(CEO)는 “내년 말까지 고성능 휴머노이드를 대량 생산해 관광·교통 안내, 쇼핑 보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전기차를 사듯 샤오펑의 로봇을 구입하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에는 로봇 기업 애지봇(즈위안)의 휴머노이드 로봇 A2가 106.286㎞의 보행을 마치고 상하이 와이탄에 도착했다. 10일 저녁 장쑤성 쑤저우시의 진지호를 출발한 이 로봇은 관광지와 시가지, 도로 등을 걸어 56시간 만에 100㎞를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걸은 가장 먼 거리’ 부문 신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스마트폰과 비슷한 가격대의 휴머노이드 로봇도 출시됐다. 중국 네오틱스 로보틱스는 최근 교육용 로봇 부미를 9998위안(약 207만원)에 출시해 이틀 만에 500대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들이 이처럼 약진하는 배경에는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14년 ‘로봇 산업 발전 계획’에 이어 2023년 ‘로봇+ 응용 액션플랜’과 ‘로봇 산업 발전 촉진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상하이, 저장성, 산둥성 등에 로봇혁신센터를 세우고 1조 위안(207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서 “중국 정부가 인구 감소, 성장 둔화 등에 대응해 로봇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혁명’을 꾀하고 있다”며 “로봇 부품에서 본체, 응용까지 산업 가치사슬을 완성해 휴머노이드 로봇 공급망에서 우위를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