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누구를 위한 수능인가

입력 2025-11-25 00:38

수능 1세대다. 1993년 8월 20일, 더운 바람을 맞으며 한 손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첫 수능을 보러 갔다. 그해는 수능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한 해에 두 번(8, 11월) 시험을 치러 잘 나온 점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얼핏 친절한 제도 같았지만 1차는 너무 쉬웠고, 2차는 너무 어려웠다. 1차 수능을 망치고 2차에 희망을 건 나 같은 처지의 수험생들은 2차가 끝난 뒤 한동안 멘붕에 빠졌다.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시험한다’는 취지로 생겨난 수능이 올해로 33년째다. 수능을 한 번이라도 쳐 본 인원만 전 국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600만명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수능은 큰애가 예비 고3 수험생이 되면서 다시 내 앞에 소환됐다. 그런데 뜯어보면 볼수록 33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1, 2차 시험 난이도 맞추기에 실패했지만 93년 때는 그래도 내 수능 점수가 몇 점인지는 알고 대학을 지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깜깜이’ 지원을 해야 한다나. 그것도 수능 시험일 이틀 뒤부터 대학별 수시고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수험생에게 주어진 선택의 시간은 단 하루뿐. 그 하루 동안 수험표 뒤에 적어온 답안지를 스스로 가채점한 것 달랑 하나 가지고 수험생은 수시에 응할지, 정시를 기다릴지 결정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수시 납치’를 당해 평생 후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시 납치는 수시 합격 통보를 받으면 정시 지원 기회가 아예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대입 정보 포털 ‘어디가’에는 ‘깡통’ 정보밖에 없으니 결국 기댈 곳은 고액의 사교육 컨설턴트뿐이다.

수능 시험은 그 자체로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비판이 많다. 출제 당국은 고교생 수준에서 풀 수 없는 ‘킬러 문항’을 없앤다며 약간 쉬운 준킬러 문항을 늘리고, 수험생을 함정에 빠뜨리는 ‘매력적인 선지’로 변별력을 제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킬러 문항 논란은 매년 발생하고, ‘불수능’과 ‘물수능’이 줄타기를 하며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수능을 없앨 수도 없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부와 대학들의 행정 편의에 맞춰져 있는 부분이라도 수험생 편의 위주로 바꾸는 친절함 정도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①수시 고사에 앞서 수능 당국이 가채점 점수를 사전 통보해주면 깜깜이 지원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지금은 시험 이후 3주 동안 이의신청을 받는다는 이유로 성적 통보가 늦어지고 있지만 이의신청에 따른 정답 변경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교육 당국의 의지만 있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②하지만 그런 의지가 없을 테니 수험생들이 수험표 뒤에 힘들게 적을 필요 없이 시험지를 수거하지만 않아도 좋겠다. 그것도 싫으면 수험표 뒤에 적을 시간을 따로 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수험표 뒤에 가채점표를 인쇄해주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한다.

③매년 수능 출제위원장의 단골 멘트는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했으면 풀 수 있게 출제했다”다. 그러나 시험 이후 출제진 어느 누구도 문항별 해설을 해주지 않는다. 이의신청을 해도 출제 당국은 ‘정답에 이상이 없음’ 세 단어로 일축해버리기 일쑤다. 출제진이 사교육 강사들보다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뒤로 숨을 필요가 없다.

④1교시에 해당 분야 교수조차 ‘난수표 같다’고 하는 국어 대신 긴장을 풀어주는 차원에서 필수 과목이자 절대평가인 한국사를 배치해도 수능 시험의 권위는 떨어지지 않는다. 수십만 명의 청춘들이 1교시부터 칸트 지문을 읽게 해 적개심을 키우는 것을 지하에 있는 칸트도 원하지 않을 테니.

이성규 사회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