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 술은 새 부대에

입력 2025-11-25 00:30

어느 날 새로 부임한 대대장은 두 명의 병사가 낡은 벤치 하나를 지키는 광경을 목격한다. 뭘 하고 있는지 묻자 그들은 경계근무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왜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이들뿐 아니라 중대장도 자신이 부대에 오기 전부터 해왔던 오래된 임무라는 것 외에 이유를 알지 못했다. 대대장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해왔다고 하니 쉽게 없앨 수 없었다. 그렇게 낡은 벤치 경계근무는 계속됐다. 알고 보니 이 벤치는 오래전 병사들이 쉴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었다. 페인트가 마르기 전까지 벤치 사용을 막기 위해 병사를 배치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일화를 보면 국가공무원 당직근무 제도가 떠오른다. 국가공무원 당직은 1949년 당시 정부청사인 중앙청에서 시작됐다. 휴일 또는 근무시간 외 청사 보안, 유사시 대응 등 최소한의 정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도 없었고, CCTV나 보안시스템도 없었다. 당직 업무 전반을 당직자가 오롯이 직접 몸으로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초고속 통신망 보급과 스마트폰 확산으로 언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서비스 확산, 자동화된 시스템, 디지털 출입과 보안시스템 도입 등 환경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1171개 기관 약 57만명의 국가공무원은 76년 전 옛날 방식 그대로 당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물론 환경이 변해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청사 출입시스템 강화, CCTV 설치 등으로 당직자의 방범·방호·방화 임무 필요성이 감소됐음에도 종일 당직실에서 대기해야 하는 근무 형태는 비효율적인 게 사실이다. 이제는 ‘휴일에 공무원들이 종일 당직실을 지키는 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지, 나아가 활력 있는 공직사회를 위한 길인지’ 물음을 던져볼 때라고 생각한다.

인사처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당직제도를 76년 만에 처음으로 대폭 개편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 복무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24일부터 입법예고를 시작했다. 재택당직과 통합당직을 확대해 약 169억원의 당직비 예산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당직근무 뒤 하루 휴무로 인한 업무 공백을 줄여 연간 약 356만 시간의 근무시간을 확보해 추가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특히 야간·휴일 전화 민원이 많은 기관은 AI 당직 민원 시스템을 도입해 당직 개편 이후 민원 응대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달라진 행정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비효율적인 당직제도가 76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어렵게 버텨왔다. 이제는 이 낡은 부대가 터져버리기 전에 과감히 버려야 할 때다.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비효율적 업무를 조정한 이번 개편이 국민들에게 보다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결실로 맺어지길 바란다.

최동석 인사혁신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