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불암산 자락. 골목마다 허연 연탄재가 쌓인 희망촌의 겨울바람은 유독 매섭다. 1년 내내 연탄을 때는 김봉룡(86)씨의 집은 현관부터 허리를 깊숙이 숙여야 들어설 수 있다. 등이 굽은 채 서 있던 김씨가 비좁은 보일러실로 들어가 익숙하게 집게를 들어 연탄을 갈았다. 구멍 2개짜리 ‘2구 3탄’ 연탄보일러다. 한 달에 연탄 300~400장은 족히 때야 겨울을 날 수 있다. 무게 3.65㎏ 연탄 1장을 들어 올리는 김씨의 굵고 거친 손마디는 그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지내온 세월을 짐작하게 했다.
김씨는 최근 자택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거친 숨을 내쉬며 “이 시커먼 게 우리 식구 목숨줄”이라며 “내가 살아서 움직이는 동안은 절대 못 꺼뜨린다”고 말했다. 이 집에서 25년째 연탄을 비우고 채우는 노동은 김씨 부부의 삶을 지키는 일종의 의식이다.
가스 배관이 없는 이곳에선 연탄이 유일한 취사도구다. 김씨는 한여름에도 이 불 위에서 부인 원만선(84)씨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잡탕밥을 짓는다. 부엌에 놓인 가스레인지는 부부가 사용한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한 통에 5만원 넘는 가스통이 사치라는 이유다.
안방에는 뇌경색을 앓는 원씨가 누워 있었고, 거실엔 ‘부부 생활의 십계명’이라 적힌 빛바랜 종이가 붙었다. 김씨는 누런 글귀 아래서 굽은 등으로 아내 식사를 챙긴다. 그는 “아내는 내가 안 움직이면 밥 한 끼 못 먹는 형편”이라며 “삭신이 아프지만 아내를 위해 집게를 놓을 수 없다”고 전했다.
상계동 일대에는 김씨같이 연탄에 의지하는 이웃이 390여 가구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이 실시한 올해 전국 연탄사용가구조사에 따르면, 전국 5만9695가구가 아직도 연탄을 땐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2년 새 19%가 줄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다. 서울에 있는 연탄공장이 문을 닫고 운송비와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닥치면서다.
김씨 부부는 전체 연탄 가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외 가구’에 속한다. 수십 년 된 낡은 판잣집이 서류상 자가로 등록된 탓에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다. 부부 수입은 기초연금 50만원뿐이다. 민간 지원 없이 연탄을 사면 배달료 포함 월 60만원이 넘게 든다. 김씨는 “연탄은행 아니면 벌써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을 것”이라며 “연탄을 팔던 구멍가게 주인도 얼마 전 세상을 떠나고, 연탄을 직접 찾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들을 지탱하던 후원의 손길마저 뚝 끊길 위기다. 올해 ‘사랑의 연탄 500만장 나누기’ 달성률은 11월 말 기준 10%인 약 50만장에 불과하다. 김씨를 돕는 박점수 통장은 “창고가 가득 찰 시기인데 주민들이 밤잠을 설친다”며 “이들에게 연탄이 끊기면 삶이 멈춘다”고 전했다. 즐거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명절이나 돼야 손주들 얼굴을 보는데 이제는 오지 말라고 한다”며 “몸이 아파 밥 한 끼 제대로 해줄 수가 없으니 자식들 오는 게 기쁨이었는데 이젠 미안함뿐”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