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내부 잘못 지적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을
내부총질 또는 수박이라고 한다면
내부총질과 수박 더 많아져야 강성 지지층
중심 정치 양극화 극복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 상생과 협력이 없는 민주주의는
결단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부총질 또는 수박이라고 한다면
내부총질과 수박 더 많아져야 강성 지지층
중심 정치 양극화 극복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 상생과 협력이 없는 민주주의는
결단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최근 국민일보 자회사 쿠키뉴스 창간 기념식에서 올 한 해 입법과 국정감사 활동을 열심히 한 국회의원들에게 표창을 하는 행사가 열렸다. 축사를 맡은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단상에 올라 이런 말을 했다. “입법과 국정감사 활동을 열심히 한 의원들한테 상을 주는 것도 좋지만 여야 대결 정치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 상생과 협력을 잘한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의원들에게도 상을 줬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쿠키뉴스도 주 부의장의 의견을 반영해 내년부터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의원들에게 상을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 상생과 협력을 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강성 지지층 중심의 양 극단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공격하고, 자기 편은 무조건 옳다며 감싸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과거 3김시대 때도 열정적인 지지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추구했고 의회정치를 존중했다. 당시에는 각 언론에 물밑협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여야 극적 타결이라는 말도 자주 1면 머리기사에 올랐다. 낮에 여야가 싸우더라도 밤에는 서로 만나 식사를 하면서 대화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물밑이든 물위든, 낮이든 밤이든 여야 의원들 간에 대화가 없다. 타협적이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간 강성 지지층에게 ‘수박’으로 찍힐 판이다. 이러다 보니 극적 타결은 없고 극한 대립뿐이다.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여야가 조금이라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상대를 인정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눈길이 가곤 한다. 사소한 일에도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맨날 상대는 나쁘고 우리는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우리 편이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부터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가 싹틀 수 있다. 요즘 정치판에서 이런 미덕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차에 최근 비스름한 사례가 하나 눈에 띄었다.
최근 정부가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투자분쟁(ISDS)에서 승소해 4000억원을 배상하지 않아도 된 것에 대해 현 정부와 전 정부가 서로 자신들의 공이라고 주장하나 싶더니 김민석 국무총리가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김 총리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만나면 (승소 계기가 된) ISDS 취소 신청을 잘했다고 말할 생각”이라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분쟁 취소 신청 때 승소 가능성이 매우 낮은데 왜 많은 비용을 들여 신청하느냐는 주장도 있었으나 당시 한 장관은 가능성을 믿고 신청했다. 잘한 일이고 소신 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이재명정부의 쾌거” “이재명 대통령의 성과”라고 주장하던 것과 다른 태도다. 여권이 야당 인사를 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최근에 본 적이 없다. 물론 한 전 장관이 기여한 사실이 워낙 분명해 계속 이재명정부 덕이라고 했다간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고 해도 요즘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얼마 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민주당 원내대표인 김병기 운영위원장이 보인 태도도 이례적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국민의힘 의원과 질의응답 도중 가족 문제가 나오자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옆에서 제지하는 우상호 정무수석의 말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이 나서서 “여기가 정책실장이 화내는 곳이냐”고 호통쳤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편을 들지 않고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진영 내부의 잘못을 지적하면 내부총질이라고 하고, 상대 진영과의 타협을 주장하면 수박이라고 한다.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부총질이나 수박이라고 규정한다면 우리 정치권에서 내부총질이나 수박이 더 많아져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판은 총만 안 들었지 내전이나 다름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로 대화하고 타협할 수 없는 민주주의는 단언컨대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대 당으로부터 존중받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하고, 같은 당 안에서 이견이 분출되고 용인돼야 한다. 강성 지지층의 환호 속에 상대 당을 무조건 공격하고 같은 당은 무조건 감싸는 정치에 대다수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국민들은 심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 국민들이 좋아하는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언제 볼 수 있을까.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