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 혈관 살피면 심뇌혈관 건강 보인다

입력 2025-11-25 02:30

눈의 망막 혈관 밀도가 낮을수록 심근경색, 뇌경색의 원인이 되는 ‘죽상경화’의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죽상경화는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안에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찌꺼기가 끈적끈적한 죽 형태로 쌓이고 이로 인해 혈관이 좁아진 상태를 말한다. 찌꺼기 덩어리가 터져 갑자기 혈관을 막으면 치명적인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망막 혈관 분포를 통해 심뇌혈관 건강의 위험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셈이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양지명, 심장내과 이승환, 영상의학과 양동현 교수팀은 2015~2020년 가족력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높으면서 안과 질환으로 망막 혈관 검사를 받은 성인 128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에 따르면 망막 혈관 밀도가 낮을수록 관상동맥 칼슘 점수, 죽상반(찌꺼기 덩어리) 존재, 혈관 협착 정도 같은 죽상경화 지표들이 뚜렷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망막 표면 가까이에 모세혈관이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층(표재 모세혈관총)의 혈관 밀도가 죽상경화의 강력한 예측 인자로 확인됐다.

표재 모세혈관총의 혈관 밀도가 가장 낮은 그룹은 가장 높은 그룹보다 죽상경화 위험이 많게는 3배 이상 높았다. 폐쇄성 관상동맥질환(관상동맥이 50% 이상 좁아진 질환) 위험은 약 2.9배, 중증 관상동맥질환(관상동맥이 70~90% 좁아짐) 위험은 약 3.3배 각각 증가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다른 장기는 침습적인 검사를 해야만 혈관을 관찰할 수 있는데, 눈의 망막 혈관은 간단한 촬영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망막 혈관의 밀도가 낮다는 것은 전신적인 혈류 공급이 약할 수 있음을 뜻한다. 연구팀은 이런 망막 혈관의 밀도가 관상동맥과도 연결성이 있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반영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윤영희 교수는 24일 “망막 혈관 밀도가 낮은 사람은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판단해 임상 현장에서 추가적인 심장 검사를 받음으로써 심혈관질환을 조기에 찾아내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승환 교수는 “관상동맥의 죽상경화는 대부분 무증상 상태를 유지하다가 급작스럽게 혈류 순환이 막힐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무증상이더라도 생활습관의 영향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이 크거나 망막 혈관 밀도가 낮아진 상태라면 죽상경화가 진행돼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기 검진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사협회지 ‘심장학(JAMA Cardiology)’ 최신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