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PC 근거리 사용 증가 등 영향
병적 근시, 20세 넘어서도 진행돼
물체가 휘어져 보이는 황반변성
진료받은 20∼40대 환자 급증
“라식 같은 굴절 교정 수술받아도
망막 구조는 안 변해… 정기 검사를”
병적 근시, 20세 넘어서도 진행돼
물체가 휘어져 보이는 황반변성
진료받은 20∼40대 환자 급증
“라식 같은 굴절 교정 수술받아도
망막 구조는 안 변해… 정기 검사를”
책 글자가 휘어져 보이는 등의 증상으로 얼마 전 병원을 찾은 30대 여성 A씨는 ‘근시성 황반변성’ 진단을 받았다. 근시가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을 손상시켜 시력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게 의료진 설명이다. A씨는 “어릴 때부터 고도 근시가 있었지만 안경 외에는 눈 건강을 따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시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안경이나 렌즈 착용, 라식·라섹 같은 굴절 교정 수술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A씨처럼 소아·청소년기에 고도 근시 관리에 소홀하면 이른 성인기부터 실명 위험을 초래하는 망막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근시를 단순한 굴절 이상이나 시력 저하가 아니라 망막질환, 녹내장, 백내장, 사시 등 심각한 눈질환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폰 근거리 사용, 실내 활동 탓 근시 증가
근시는 원래 망막(카메라의 필름 격) 위에 맺혀야 하는 상이 망막 앞에 맺히면서 먼 거리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시력 이상이다. 이는 눈의 각막 굴절력이 너무 크거나 안구가 길어서 생긴다. 안경 도수를 나타내는 디옵터가 0.5 이상일 때 근시 진단을 받으며 2디옵터 미만이면 경도 근시, -2~-6디옵터면 중등도 근시, -6디옵터 이상이면 고도 근시에 해당한다.
안구의 길이가 26㎜ 이상일 때도 고도 근시로 분류된다. 안구가 앞뒤로 심하게 길어진 환자는 근시뿐만 아니라 망막이 약해지면서 손상이나 노화에 더 취약해진다. 단순 근시는 대부분 20대 초반에 진행을 멈추지만 안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병적 근시’는 20세를 넘어서도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근시는 유전적 요인과 함께 스마트폰·PC의 근거리 사용 증가, 야외활동 감소 같은 환경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어릴 때부터 전자기기 사용 시간이 늘고 실내 활동 위주로 생활환경이 변하면서 소아·청소년은 물론 젊은 성인 연령에서도 근시 유병률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24일 대한안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국민건강영양조사(2016~2017년)에서 5~18세 연령대 근시 유병률은 65.4%, 고도 근시는 6.9%로 각각 집계됐다. 5세에서 15%였던 근시 유병률은 7세부터 가파르게 증가해 13세에서는 76%로 껑충 뛰었다. 고도 근시 유병률도 11세에서 6.8%였던 것이 16세 이후 20%로 3배 가까이 늘었다. 2013~2022년 군 신체검사를 받은 서울 지역 19세 남성 조사에서는 근시 유병률이 70.7%, 고도 근시 유병률이 20.3%였다. 각각 해마다 0.61%, 0.33%씩 증가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근시가 심할수록 망막 구조에 변화를 불러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시력 손상으로 이어진다. 망막의 중심 황반부가 손상되는 황반변성이 대표적이다. 시력 저하, 물체가 휘어지거나 변형돼 보임, 사물 중심 부분이 잘 보이지 않음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실명까지 갈 수 있다.
주요 발병 요인은 노화이지만 근래에는 근시 인구가 증가하면서 병적 근시로 인한 근시성 황반변성이 경계 대상으로 떠올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황반변성 진료 환자는 40대가 2021년 1만3131명에서 2023년 1만7487명, 같은 기간 30대는 2986명에서 4109명, 20대는 1193명에서 1347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근시성 황반변성 환자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다만 김안과 망막병원 김예지 전문의는 “이전 연구에서 50세 미만 젊은 황반변성의 60%가량이 고도 근시로 밝혀진 바 있다”며 “국내 20~40대 환자에게서도 고도 근시가 원인 중 비율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안과 박운철 교수는 “고도 근시 황반변성은 주로 40대에서 발생하며 여성이 남성보다 흔하다”며 “고도 근시 환자 중 안구 길이 증가 등 구조 변화가 멈추지 않고 오랜 시간 서서히 진행되는 사람은 40·50대에 망막과 황반 기능이 정상이더라도 60·70대에 새롭게 황반변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 ‘근시성 황반변성’ 경계해야
안구가 늘어나는 속도를 세포 조직이 따라가지 못하면 망막 가운데에 구멍이 생기고 결국에는 망막 조직이 제자리에서 떨어지는 박리가 올 수 있다. 근시 환자는 일반인보다 망막 박리 위험이 8배나 높다. 근시가 있는 사람이 눈앞에 먼지나 작은 벌레가 떠다니는 듯한 날파리증이나 눈앞이 번쩍거리는 광시증을 겪는다면 망막 박리의 전조 증상으로 서둘러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대한안과학회 유정권 기획이사는 “일반인에 비해 중등도(중간 정도) 근시는 녹내장 위험이 2.2배, 고도 근시는 4.6배 각각 높아진다고 보고됐다”고 밝혔다. 녹내장 역시 조기 실명 질환으로 꼽힌다. 안압 상승이 원인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선 정상 안압 녹내장의 유병률이 높은데, 근시가 주요 위험 인자로 부상했다.
초고도 근시(-8디옵터 이상)는 백내장 발병률이 최대 5.5배 높아지며, 심한 근시는 눈의 길이 증가로 사시를 부를 수도 있다. 대한안과학회 김찬윤 이사장은 “병적 근시는 단순히 안경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생활의 불편함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실명 가능한 안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도 근시가 있다면 눈에 평소와 다른 증상이 생겼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특히 시력 변화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6개월에 한 번씩 망막단층촬영(OCT) 및 안저 검사, 1년에 1회씩 안구 길이 검사를 통해 변화 여부를 관찰하는 것이 좋다. 갑자기 시야 한가운데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거나 어둡게 보이는 등 시력 저하가 느껴지면 곧바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
김예지 전문의는 “라식이나 라섹 같은 굴절 교정 수술을 받더라도 망막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며 “각막의 굴절력을 조정해 시력을 교정할 뿐 안구 길이나 망막의 변성을 개선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도 근시였던 사람이 굴절 교정 수술 후 시력이 좋아졌더라도 여전히 근시성 황반변성 등 병적 안과 질환의 위험이 남아있으므로 정기 검진과 관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