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능적으로 손실을 두려워한다.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잃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변화보다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심리, 이른바 ‘현상유지 편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의 가치를 훨씬 크게 평가한다. 오죽하면 ‘투자는 돈을 벌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잃지 않기 위한 방어전’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투자자에게 원금을 지키는 일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 손실은 곧 고통이고, 그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외면한다. 멀리서 날아오는 돌멩이는 피하지만 눈앞에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는다. 그때의 무력감과 불안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궁지에 몰린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듯 고통스러운 현실을 차단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는 극단적인 형태의 고통 회피이며,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손실 회피 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이 손실과 이익에 대해 비대칭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전망 이론’을 통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익으로 얻는 즐거움보다 손실로 느끼는 고통이 1.5~2.5배 크다고 밝혔다.
일상생활에서 손실에 대한 공포는 결정을 가로막는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쉽게 이혼을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 상태를 유지할 때보다 이혼 후 잃게 될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골프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관찰된다. 같은 난도의 퍼팅에서도 파 찬스 성공률이 버디 찬스보다 3.6% 포인트 높다는 연구가 있다. 버디를 놓쳐도 파를 기록하면 손실이 없지만 파를 놓치면 즉시 벌타라는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손실 회피 심리가 집중력을 한층 끌어올리기도 한다. 인간은 이득을 좇기보다 손실을 피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다.
부동산시장에서도 손실 회피 본능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본능은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에게 작동한다. 우선 매도자들은 옛 가격을 기억하기에 그 이하로 싸게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시장이 불황기로 접어들어도 시세보다 낮은 급매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즉 가격이 먼저 내려가기보다 거래량이 먼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거래량 감소가 장기간 이어져야 드디어 가격이 내려간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거래량 감소 속에서도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더욱이 공급 부족 우려와 풍부한 유동성도 매도자의 버티기를 가능하게 한다. ‘어차피 더 오를 텐데 지금 싸게 팔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시장을 지지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매수자들의 시각은 정반대라는 점이다. 매수자는 쉽게 ‘사는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요즘 집값과 반비례 관계인 대출금리가 오르고 금융시장도 불안하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매수자는 가격을 더 강하게 할인하려 하고, 충분히 싸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거래가 격감하는 것은 수요자의 손실 회피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결국 매도자와 매수자의 심리가 엇갈린 ‘동상이몽’이 가격과 거래량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당분간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고, 거래량이 줄어드는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짧으면 1~3개월, 길게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 흐름이 유지될 전망이다. 시장 방향을 가르는 분수령은 6·3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즈음 세제개편안 논의가 본격화하면 시장 참여자, 특히 매도자의 심리를 바꾸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지 좀 더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