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조용한 팬데믹’ 항생제 내성

입력 2025-11-25 00:31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을 ‘조용한 팬데믹’으로 규정하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글로벌 보건 위협 중 하나로 경고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이란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항생제를 회피하는 능력을 획득하는 현상이다. 간단한 치료로 회복할 수 있던 감염조차 치료가 어려워지고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실제로 WHO는 2019년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피할 수 있었던 직접적 사망이 127만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항생제 내성 확산은 사람 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 동물, 환경을 넘나들며 전파된다. 때문에 대응 역시 전체 시스템을 아우르는 접근이 필요하다. 동물에서의 항생제 사용이 인간의 항생제 내성에 어떤 규모로 영향을 미치는지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두 영역의 연관성 자체에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축적돼 있다. 티아물린, 플로르페니콜 등 일부 동물 전용 항생제를 제외하면 사람과 동물에게 사용되는 항생제는 대부분 동일하다. 때문에 가축이나 양식장에서의 부적절한 항생제 사용은 동물과의 접촉 또는 식품을 통한 경로로 큰 위협이 된다.

축산 환경에서 생성된 분뇨퇴비 슬러지 같은 물질 역시 중요한 경로다. 이들은 토양과 작물 환경으로 유입돼 식물에서 항생제 내성균과 내성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연구가 다수 보고됐다. 이는 다시 물과 식품의 경로를 거쳐 인간의 장내 미생물군에 전달된다. 이처럼 토양·물 환경은 내성균과 내성 유전자를 확산시켜 인간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숨겨진 내성 저장소로 작동하고 있다.

항생항균제 사용량, 내성균 모니터링, 처방 관리를 위한 비교적 엄격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인간 의료 부문과 달리 동물 분야는 여전히 규제가 느슨하다. 전 세계 항균제 사용량의 약 73%가 식용 동물에서 사용될 정도로 항생제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도 수의사 처방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상당수 농가에서 항생제를 먼저 주문하고, 수의사가 이에 맞춰 처방전을 발행하는 게 관행이다. 반려동물 부문 내성 모니터링도 2018년 도입됐으나 동물병원의 자발적 보고 방식이어서 개선이 필요하다.

환경 분야는 더욱 사각지대다. 물 환경의 내성균과 내성 유전자 감시는 연구 차원에서 이뤄졌을 뿐 정책적으로 정례화된 감시체계는 없다. 이는 다른 국가도 다르지 않다. 미국 일부 주에서 파일럿 형태의 하수 기반 항생제 내성 감시를 진행 중이지만 국가 단위로 상시 감시체계를 갖춘 나라는 사실상 없다.

인간·동물·환경·농식품 시스템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통합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 구축은 국제 기구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최우선 글로벌 의제다. 한국도 필요성을 인식해 2차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에서 원헬스 관점의 사람·동물·환경 분야 통합 감시체계 구축을 우선순위 정책으로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항생제 사용량과 내성률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가 포털 구축, 표준시험법 개발, 원헬스 항생제 내성 표준 실험실체계 마련 등 핵심 토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일차적으로 인간·동물·환경 각 부문에서 대표성이 확보된 정확한 항생제 내성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현재는 수집된 데이터마저 부처별로 분절돼 공유·연계할 법적·기술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안정적 재원과 전문인력 확충이 필수적이며, 통합 감시의 중요성에 대한 범정부적 공감대가 선행돼야 한다. 신뢰성 있는 항생제 내성 감시체계 선도적 구축은 국가 경쟁력 강화, 외교적 레버리지 제고는 물론 수출 농축산물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져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통합적 항생제 감시체계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 책무다. 이는 비용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투자이며, 한국이 항생제 내성 대응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화영 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