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엔에서 ‘자위권 행사’까지 거론하고, 미국도 일본 방위에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며 중·일 갈등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도 ‘대만 유사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받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의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할 경우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면서 미국의 다른 동맹국에도 ‘대만 문제에 신중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싱크탱크 하이이연구소의 양천 일본연구센터장은 “중국의 행보는 중층적인 전략적 신호”라며 “단순히 일본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호주를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 그리고 더 광범위한 아시아·태평양 국가에 ‘대만 유사시’ 신중해야 한다고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강경한 대일 메시지는 한국에 보내는 간접 경고로도 읽힌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일본에 던진 메시지는 한국에도 ‘대만 문제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를 간접적으로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재명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만 문제는 이를 단번에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뇌관이다. 중국이 중요시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이라는 입장을 줄곧 밝혀 왔다. 중·일 갈등과 관련해서도 타국 간 외교 사안 언급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중·일 갈등이 격화할수록 한국에 대한 ‘입장 요구’는 더 빠르고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정부가 불개입 기조를 이어갈지, 한·미·일 협력 요구에 어느 정도 응할지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연구위원은 “일본 편을 들고 있는 미국이 대만 유사시 한·미·일 동맹의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한다면 정부가 미국에 ‘노’라고 할 수 있는지, 수용한다면 얼마큼 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선택의 순간에 대비해 정치권과 정책 결정권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관한 외교 전략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미·일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경우 한·중 및 남북 관계에 미칠 경제·외교적 파급 효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중 무역뿐만 아니라 희토류 제재로 국내 주요 산업이 타격받을 수 있고, 중국을 남북 관계 복원의 지렛대로 삼으려던 외교 전략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반대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려면 미·일을 설득할 논리를 내놓아야 한다.
중국의 강경 메시지는 미국의 ‘아시아 관여 의지’를 판단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 중국이 일본과의 갈등을 통해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관여하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보려 한다고 보도했다.
일본 지경학연구소(IOG)의 국제관계 전문가 폴 나도는 “의도했든 아니든 중국으로선 미국과 일본 사이의 틈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기회”라고 말했다. 앞서 미 국무부와 주일 미국대사 등이 메시지를 내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중·일 갈등 확산 구조 속에서도 수사적 차원에서만 입장을 내놓고 있다.
최예슬 조승현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