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문항 오류가 있었고, 고교 수준을 넘어서는 출제가 이뤄졌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시험한다’는 수능 도입 취지는 퇴색된 지 오래됐다. 올해로 도입 33년째를 맞는 수능을 한 번이라도 시험 쳐 본 이들은 전 국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600만명이나 된다. 당장 수능 폐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수능 제도 내 행정편의적 부분만이라도 수험생 편의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2026학년도 수능 국어 3번 문항의 지문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필립 고프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학 전 명예교수의 ‘단순 관점’을 다룬 지문을 오류로 지목했다. 이 교수는 해당 문항에서 다룬 단순 관점을 10년 넘게 연구하고 강의해온 전문가다. 그는 “출제 당국이 고3 학생들에게 ‘난수표’ 같은 글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글을 이해하기보다 답만 맞히려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포항공대(포스텍)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충형 교수도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인격 동일성에 관한 견해를 다룬 17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 지문을 이해하는 데 칸트를 연구해온 자신도 20분 걸렸다고 비판했다. 두 교수의 문제 제기는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이른바 ‘킬러문항’은 출제하지 않았다는 교육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주장과 배치된다.
수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은 교육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평생 관련 분야를 연구한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문항을 내지 않으면 사교육으로 5지 선다형 문항에 단련된 상위권 수험생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2018학년도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자 출제 당국은 국어의 난도를 끌어올렸고 킬러문항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 입시 전문가는 “킬러문항을 피한다고 약간 쉬운 준킬러문항을 늘리고 수험생을 함정에 빠뜨리는 ‘매력적인 선지’ 등으로 ‘불수능’과 ‘물수능’이 매년 줄타기를 하는 현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