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 곳곳에 스며드는 와중에 국내 대학가는 ‘AI를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딜레마에 직면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비대면 시험에서 AI를 사용하는 부정행위까지 속출하고 있다. AI 전문가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보형(사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학업 현장에서 AI 사용을 제한하긴 어렵다고 단언했다. 대신 이를 고려해 교습법이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025년 AI 주간’을 맞아 선정한 이달의 과학기술인으로 꼽힌 AI 전문가다.
한 교수는 2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AI는 큰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부정행위에 AI를 쓰는 것도 자신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과거 인터넷이 보편화되며 연구·평가 방식이 크게 달라졌듯 AI 시대에 맞는 다양한 교습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나 스스로도 AI 활용도가 높은 리포트 등의 과제 비중을 줄이고 대면 시험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소개했다. 미국의 한 중학교는 책을 요약하는 과제를 내면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 과제는 이후 시험의 유일한 참고자료로 활용됐다. AI를 이용하는 등 과제를 대충했다면 시험에서 자신의 본래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학생들의 성실성을 평가한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사례에서 보듯 창의적인 평가 방법이 필요하다”며 “학생들도 AI에 의존하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AI를 활용한 부정행위를 막는 건 근본적으로 교수나 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험 때 AI를 쓰지 말라는 건 해킹하려는 사람한테 ‘하지 말라’ 반복하는 것과 같다”며 “해킹을 막는 데 비용이 엄청 드는 것처럼 AI 부정행위를 막는 것도 결국 인력과 예산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AI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모든 범죄에 AI가 사용될 수 있지만, 이를 일일이 막기는 어렵다”면서 일종의 ‘AI 헌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복잡한 규칙보단 헌법처럼 큰 가이드라인을 세워 법과 규범을 배우듯 AI 윤리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