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아동 돌봄 20여년… 첫 개인전으로 열매 맺다

입력 2025-11-24 03:02
위탁아동 보육시설인 ‘생명을주는나무’를 운영하는 최정숙(왼쪽) 사모가 최근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전시에 힘을 보탠 가수 선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이들 덕분에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뤘습니다”

화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최정숙(57) 사모의 얼굴에는 설렘과 뿌듯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남편인 생명빛교회 김무일 목사와 함께 지난 20여년간 한부모,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온 그가 처음 열게 된 개인전이었다. 오래 참고 노력한 끝에 맺은 결실이지만, 그는 동역자들의 도움과 곁을 지켜준 아이들 덕에 가능했다고 공을 돌렸다.

최근 경기도 용인 수지구 카페 ‘스프링 사운즈’ 3층 전시장에서 만난 최 사모는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 첫날인 이날 가희 별 선예 양동근 조권 등이 참여한 기부 공연과 최 사모와 함께 생활하는 위탁아동 30여명의 장기자랑 무대도 마련됐다. 미리 준비된 영상에서 한 아이가 ‘엄마가 왜 좋으냐’는 질문에 “저를 포기하지 않아서요”라고 담담히 답하자 최 사모는 눈시울을 붉혔다.

최 사모는 남편과 함께 위탁아동 보육을 주 사역으로 하는 NGO ‘생명을주는나무’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의 사정 등으로 양육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낮에 돌보거나 함께 생활하며 교육과 주택 지원 사업도 펼친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만 110명에 달한다.

최 사모의 그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 공간엔 아이들을 돌보며 고단한 순간에도 틈틈이 그려낸 작품 30점 가량이 걸렸다. 아이들이 없을 시간에 잠시 붓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완성한 것들이었다. 가수 선예와 향기, 배우 김예랑 등 봉사자들이 ‘엄마’ 최 사모가 오랫동안 보관만 하고 있던 작품을 전시하자고 뜻을 모으고, 카페 대표를 설득해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최 사모는 잘나가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남편 역시 성실히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세 자녀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누렸다. 그러나 돌봄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알게 되며 ‘더 많은 생명을 살리라’는 소명을 받은 30대 중반, 모든 일을 내려놓았다. 사역 초반엔 남편이 목사 안수를 받고 생계가 곤란해진 적도 많았다. 상가교회에서 먹고 자던 시절, 전기가 끊겨 상가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지만 최 사모는 “추위를 피하려고 아이들과 다닥다닥 붙어 잘 때가 참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함께 지내는 아이들은 엄마의 그림이 전시된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고 한다. 최 사모는 “엄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저보다 더 좋아했다”고 했다.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완성한 작품도 있다. 그는 “요즘 제 그림이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얻은 제 안의 평안과 따뜻함을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개인전은 ‘잇다’를 주제로 26일까지 열린다. 최 사모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선으로 연결되고 사랑으로 생명을 피워내듯 관람객들이 관계와 사랑 안에서 소중한 순간을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용인=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