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가 응급실에 수용되지 못하고 거리 위를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병원 선정 주체를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다.
23일 국회 등에 따르면 현재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기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과 ‘119구조구급법 개정안’이 각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검토되고 있다. 두 법안의 공통점은 구급대원이 응급실 수배 전화를 돌리지 않도록 응급의료법에 규정돼 있는 응급실의 ‘수용 능력 확인’ 조항을 사문화하는 것이다.
119법 개정안은 구급대원에게 이송 병원을 직접 선정할 권한을 부여했다. 현장에서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한 뒤 응급처치 표준지침을 기준 삼아 적절한 병원으로 신속히 이송하자는 취지다. 환자의 응급처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이후 전원 조치를 고려하자는 맥락도 담겼다. 행안위는 이르면 26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이 법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복지위에 계류 중인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현장 이송은 소방청 소관인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 간 전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권역응급의료상황센터가 맡도록 역할을 조정했다. 이를 위해 수용 능력 확인 조항은 삭제하고, 수용 여력이 없는 병원은 상황센터에 수용 불가를 사전에 고지하도록 해 이송·전원 절차에 속도를 더했다.
이 지점에서 복지부와 소방청의 시각차가 생긴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소방청은 현장에서 구급대원이 응급실을 찾느라 전화를 돌리는 이른바 전화 뺑뺑이 사태를 구급상황관리센터로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고 지적한다. 현장 이송의 소관을 구급대원에서 구급상황관리센터로 바꾸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복지부는 119법 개정안대로 현장에서 119구급대원이 병원을 직접 선정하면 특정 응급실의 과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환자 이송 단계에서 발생하던 전화 뺑뺑이가 사실상 병원 간 전원 단계로 옮겨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소방청과 복지부가 전화 뺑뺑이를 놓고 ‘폭탄 돌리기’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같은 난맥상이 고질적인 응급실 의사 인력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의료계는 진료역량이 부족한 병원은 상태가 위중한 환자일수록 환자 수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정부는 의료진의 민형사 책임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