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먹거리 물가 폭등의 주범으로 ‘담합 의혹’을 정조준하며 식품업계가 긴장감에 휩싸였다. 설탕 담합 의혹이 불거진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제당업계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경영진이 구속되는 등 사태가 급물살을 탔다. 설탕뿐 아니라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의 핵심 원재료인 밀가루와 계란으로까지 조사 대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양사는 설탕 가격 담합 의혹을 받는 최낙현 대표이사가 지난 21일 ‘일신상의 형편’을 이유로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직을 사임했다고 공시했다. 최 대표의 사임으로 삼양사는 기존 강호성·최낙현 각자 대표 체제에서 강호성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이는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이 최 대표와 김상익 전 CJ제일제당 식품한국총괄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달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임직원 4명의 영장이 기각됐던 것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검찰이 국내 제당 3사(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를 동시에 압수수색하며 본격화했다.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 원당 가격 흐름과 달리 기업들이 국내 설탕값을 인상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설탕 가격은 46.9%, 밀가루 가격도 34.5% 상승했다. 빵·디저트·음료 등 설탕 기반 제품 가격까지 잇따라 오르며 이른바 ‘슈가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됐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원당 국제가격이 2023년 t당 600달러에서 최근 357달러까지 하락했는데도 국내 설탕 소매가격은 변동이 없었다”며 “상위 3개사가 90% 내외를 점유하는 과점 구조에서는 독과점력을 남용한 폭리 취득 등 담합 의혹이 있는지를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94%에 달한다.
구조적 문제도 드러났다. 완제품 설탕(정제당)의 관세율이 기본 30%로 책정돼 있는 반면, 설탕 원료인 원당은 3%의 낮은 관세율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국내 제당사들이 원당을 수입해 가공·판매하는 방식이 고착됐다. 설탕 완제품 수입은 사실상 시장 경쟁력을 잃었고, 국내 과점 체제가 더욱 강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부는 가격 안정과 경쟁 활성화를 위해 관세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설탕 할당관세율과 적용 물량을 확정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다른 업체들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설탕과 함께 빵값 인상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 밀가루 시장은 CJ제일제당·대한제분·사조동아원 등 3개사가 약 70%를 점유하는 구조다. 공정위는 지난달 이들 포함 7개 제분업체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이며 가격 협의나 출하 조정 등 담합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대한산란계협회가 회원사에 고시가격을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해 계란 가격 상승을 유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