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시장엔 늘 ‘광풍’이 분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리라던 1999년, 손안의 혁명을 약속하던 2010년 스마트폰 도입기, 새로운 돈을 말하던 2017년 암호화폐, 일상을 삼킬 듯했던 2021년 메타버스까지 그랬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투자금이 몰리면, 조금 뒤엔 어김없이 “역시 거품이었다”는 비관이 따라붙는다. 요즘의 ‘AI 거품론’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AI를 둘러싼 회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80년대, 2010년대 딥러닝 열풍 때도 인공지능은 한 번씩 ‘과대평가’ 딱지를 붙였다가 다시 부활했다.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AI가 이제 연구실을 넘어 개인 투자자의 계좌 한가운데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엔비디아와 반도체, 데이터센터와 로봇까지 ‘AI 테마’라는 이름으로 지수를 밀어 올렸다가, 조정이 오자 곧장 거품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기술은 느릴지라도 꾸준히 진화한다. 인터넷 거품이 꺼져도 인터넷은 사라지지 않았고, 암호화폐 폭락에도 블록체인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거품은 기술이 아니라 기대의 속도에서 생긴다. 미래를 지나치게 앞당겨 가격에 반영할 때, 현실이 따라오지 못하며 간극이 생긴다.
요즘 2030 세대의 투자 흐름은 이 ‘속도의 착시’를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코스피 4000 시대가 열리자 “나만 안 오르면 손해”라는 포모(FOMO) 심리가 빚투까지 부추겼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클수록 조급함은 더 커진다. 지난주 엔비디아의 호실적 발표 뒤 차익실현으로 주가가 흔들리자, AI 거품론이 재부상했다. 흔들린 건 기술이 아니라 기대였다.
AI가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는 장기 전망의 영역이다. 그러나 매수·매도 버튼 앞에서 우리는 이번 주 시장과 이번 달 수익률에 흔들린다. 어쩌면 AI 거품론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가장 쉽게 꺼내드는 말일지 모른다. 기술의 시간은 길고 느리지만, 인간의 기대와 공포는 늘 너무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