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석기 (15) 이민 사회 무너진 가정… 눈물로 남편을 품은 아내

입력 2025-11-25 03:06
2013년 미국 오렌지카운티 여성 구치소에서 만난 여성이 한국으로 추방되는데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이들을 돕기 위해 서울 관악구에 마련한 쉼터 개원 예배 모습.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지금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이르게 되었으나,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에 이르렀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주님이셨다.

떠올릴 때마다 감사가 흘러나오는 가정이 있다. 그 집엔 이제 든든한 남편이 있고, 장성해 부모의 기쁨이 된 두 남매가 있다.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한 남편의 아내이자 두 남매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 가정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기도가 있는 집이다. 어떤 일을 만나도 주님의 뜻을 먼저 묻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가족이 되었다.

그 아내는 긴 세월 눈물을 삼키며 꿋꿋이 견디고 두 남매를 키워냈다. 나는 그녀의 남편을 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 LA에서 네 시간가량 떨어진 산타바바라 지역 교도소였다. 우리 사역팀은 한 달에 한 번 그곳을 방문해 말씀을 전했다. 그 안에는 열 명 남짓의 한인 재소자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는 긴 형기를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몇 년이 흘러 남은 형기를 마친 그가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를 나는 그때 처음 만났다. 그녀의 첫인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오랜 세월 흘린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아르테시아 산업단지에서 교회와 선교회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남편은 가끔 교회에 나왔지만 아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 가정을 자주 심방했다. 출소 후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그 남편의 일터를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정을 찾을 때마다 아내의 마음속 깊은 상처가 느껴졌다. 10년 넘게 남편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워온 세월의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민 목회를 하며 나는 수많은 가정의 무너짐을 보았다. 이민 사회의 현실은 처참하고 치열했다. 서로 울면서도 일어서지 못하는 가정들, 교회 안에서도 말 못 하고 아파하는 부모들, 자녀와의 대화 단절….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와 문화와 가치관이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차이가 문제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교도소에 가는 건 특히 큰 시련이었다. 함께 일해서 겨우 집값과 생활비를 맞추는 현실 속에서, 부부 중 한 명이 수감된다는 건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걸 넘어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서는 일이었다. 실제로 내가 만나고 돕고 중보했던 가정 대부분이 깨졌다. 자녀들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처음엔 버텨보지만 결국 포기하고 이혼하거나, 설령 기다려 출소를 맞이해도 그 이후 갈등이 더 크기 일쑤였다.

보상심리 때문이었다. 오랜 수감 기간 혼자 가정을 지킨 배우자가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고 경제적·정서적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갈등을 넘지 못하고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수감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미국의 재범률은 73%에 달한다.

이민자의 현실은 더욱 회복이 어렵다. 출소 후에도 3~5년의 보호관찰이 이어지고, 그 기간 작은 실수 하나만 있어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한다. 법과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들은 늘 불리한 조건 속에서 싸워야 했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