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보다 춤”… 노년의 몸과 마음에 리듬을 채운다

입력 2025-11-24 01:11
지난 21일 경기 부천시의 한 댄스 교실에서 댄스복을 입은 사교댄스 회원들이 풍차 동작을 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천=이병주 기자

지난 21일 경기 부천시의 한 댄스 교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트로트 선율 속에 화려한 복장 차림의 수강생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60∼70대의 회원 15명이 동호인 댄스스포츠 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평일에 하루 한 시간씩, 두 차례 사교댄스를 즐긴다.

수업은 윤다훈 원장의 리드로 몸풀기 댄스로 시작됐다. 회원들은 앞뒤, 좌우로 움직이며 박수를 치고 팔을 뻗어 올리며 춤사위에 시동을 걸었다. 발굽이 달린 댄스화 밑창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승마장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본격적인 수업이 이어지자 검정 복장의 남성 회원과 붉은 옷차림의 여성 회원이 짝을 이뤄 마주봤다. 홀딩(서로 마주 보고 손을 잡는 자세)을 취한 회원들은 4분 가까이 음악이 흐르는 동안 ‘풍차’(함께 회전하며 원을 그리는 동작) 기술 등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까꿍’ 동작이 나올 때면 모두 얼굴을 가렸다가 양손을 펼치며 “까꿍”을 외쳐 교실 가득 웃음이 번졌다.

김태식(70)씨는 수년 전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손가락 일부를 잃었다. 그는 “사고 이후 우울증에 빠져 이대로 가면 위험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2020년 사교댄스를 시작한 뒤 삶의 길이 다시 열렸다”고 말했다. 이어 “유방암을 앓은 아내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 뒤 골밀도가 개선되고 전반적으로 건강이 회복됐다”고 덧붙였다.

사교댄스는 스포츠댄스와 달리 친목과 여가를 목적으로 한다. 한국에는 6·25 전쟁을 거치며 대중화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대표적인 장르는 빠른 박자에 경쾌한 스텝과 회전이 특징인 ‘지루박’, 느린 박자 속 부드러운 움직임이 중심인 ‘블루스’, 트로트 리듬을 살린 간결한 스텝의 ‘트로트’ 등이 있다. 사단법인 대한생활체육회 51개 가맹 종목 중 하나로 등록돼 있다.

대한민국 댄스프로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윤 원장은 “사교댄스는 격한 움직임이 많아 고령층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스포츠댄스와 달리, 60대 이상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며 “유산소 운동 효과는 물론 직접 안무를 구성하는 과정이 두뇌 회전을 도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부와 자매, 형제 회원 등 다양한 수강생이 함께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원을 찾은 전인숙(71)씨는 남편 안창국(76)씨와 함께했다. 전씨는 “세 자녀를 모두 결혼시키고 남편과 사교댄스로 노후를 즐기고 있다”며 “춤을 추기 시작한 뒤 자세가 교정되고 건강도 좋아졌다. 당뇨와 고혈압도 없고, 약도 전혀 먹지 않는다”며 웃어 보였다.

사교댄스는 실버 세대에게 ‘가성비 취미’로도 통한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사는 안창훈(75)씨는 “매일 경로당에 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역이나 도봉산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일상이었다”며 “지금은 학원에서 춤의 기초를 배우고 5000원이 채 안 되는 비용으로 주민센터나 콜라텍에서 온종일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부천=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