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방 자치를 실시한 지 30년째 되는 해다. 1995년 6월 27일 광역 및 기초 단체장과 지방 의원을 뽑는 4대 지방 선거가 동시 실시됐다. 군사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 자치는 이로써 완전히 복원됐다. 그러나 지방 자치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다. 지자체에 더 많은 자치 권한과 재원이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자치 능력에 대한 비판도 많다. 지방 자치의 혼란은 스스로 해야 할 역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30년 지방 자치가 이룬 성과를 지방 정치인들에게 물어본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답이 43.5%로 가장 많았다. ‘민주주의 발전’(23.0%), ‘지역 경제 발전’(18.7%) 등이 뒤를 이었다. 주민 삶의 질 개선이 최대의 성과였다는 말은 그것이 지방 자치가 가장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영역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방 자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기초 지자체는 주민의 생활 문제에 집중한다. 보육, 초등 교육, 1차 의료, 지역 보건, 노인과 장애인 복지, 동네 교통, 이를 위한 생활환경, 도시 계획 등이 주된 활동이다. 광역은 중등 교육, 병원과 응급 의료, 광역권의 교통, 도시 계획, 환경·자원 관리, 산업과 노동 지원 등을 맡는다. 한국에서는 기초와 광역 지방정부가 모두 종합 행정을 반복하는 체계라면 유럽은 역할을 분담한다.
돌봄은 전형적인 지방 정치의 주제다. 주민의 삶을 보살피는 일이 기초 지자체의 기본 업무이고, 삶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좋은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3월부터 통합 돌봄이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처음에는 낯선 신규사업이겠지만 수년 내에 돌봄은 기초 지자체의 주 업무가 되어 갈 것이다. 이제 지자체는 자치 업무다운 업무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방향, 제도, 재원 등을 지원할 뿐 하나하나 간섭하지는 말아야 한다. 일을 망칠 뿐이다. 기획재정부도 예산에 일일이 꼬리표를 달지 말고 지방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부금 방식의 재원을 늘려야 한다. 행정안전부 역시 지방 공무원의 정원을 간섭하는 기준 인건비 제도를 버리고 인사 권한을 지방에 넘겨줄 때가 됐다. 강고한 중앙 집권의 관행이 쉽게 변할 수 있을까가 문제다. 돌봄은 지방 자치가 필요하고 지방 자치는 돌봄이 필요하다. 돌봄은 결국 지방을 변화시키고 중앙 정부도 변하게 만들 것이다.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