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사나에노믹스의 화살

입력 2025-11-24 00:38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내각에서 2명뿐인 여성 각료 중 하나인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보수 성향의 자민당 안에서도 급진 우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재무성 관료 출신인 가타야마는 급진적인 재정 확장, 금융 완화에 비판적이었다. 이런 가타야마가 다카이치 내각에서 재무상으로 임명되자 ‘사나에노믹스’와 정책을 일치시키지 못해 재정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 정부가 지난 21일 임시 각의에서 결정한 21조3000억엔(약 200조원) 규모의 ‘종합경제대책’은 재무성 원안보다 4조3000억엔이나 증액된 것이다. 당초 재무성은 지난 14일 감세를 포함해 17조엔 규모로 작성한 경제대책을 보고했지만, 다카이치는 “형편없는 정도가 아니다. 다시 가져오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결국 원안보다 25%나 증액된 최종안이 나왔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경제대책은 ‘대규모 돈 뿌리기’로 설명된다. 만 18세 이하 국민 전원에게 1인당 2만엔이 일률적으로 지급되고, 내년 1~3월 가구당 7000엔씩 전기·가스 보조금이 지원된다. 일본 언론이 가장 주목한 대목은 고물가 대응책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에 맡기는 ‘중점 지원 지방교부금’에는 2조엔이 투입됐는데, 그중 4000억엔은 식료품 고물가를 상쇄하기 위해 배포되는 ‘쌀 상품권’이나 ‘전자 쿠폰’ 발행 예산에 할당됐다. 이는 국민 1인당 3000엔씩 돌아가는 금액이다. 감세를 제외한 일반회계 세출 예산은 17조7000억엔으로, 이는 전년도(13조9000억엔)보다 27%나 늘어났다. 일본 정부는 위기 때마다 세출 예산을 늘렸지만 그 규모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를 빼면 올해보다 많지 않았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4조엔, 동일본 대지진이 강타한 2011년 15조엔으로 올해보다 적었다.

다카이치는 이번 경제대책에서 아베노믹스의 ‘3개의 화살’(무제한 양적완화·재정 확대·경제구조 개혁) 중 재정 확대라는 화살을 집권 1개월 만에 활시위에 놓고 당겼다. 가타야마는 재정 완화에 비판적인 자신의 신념을 뒤집고 다카이치 내각의 ‘책임 있는 적극 재정’에 동조했다. 그는 경제대책 발표 직후 “책임 재정도, 적극 재정도 부지런히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철회했던 ‘현금 지급’이 사실상 부활한 것”이라며 “경제대책에서 지원 대상을 세분화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마노 히데오 제일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예산 규모를 더 축소하거나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재정 확장 뒤에 따라오는 인플레이션과 통화 약세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다카이치 내각에서 일본은행은 눈치를 보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다카이치와 면담한 뒤 환율 대응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언급은 삼가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우에다는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계획이지만, 완화적 통화 정책을 선호하는 다카이치 내각에서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다.

내각은 돈을 뿌리고 재무상과 중앙은행장은 머뭇거리는 일본에서 시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재정 악화 우려에 따라 엔화는 약세가 예상되는데도 경제대책이 발표되자 급등하는 기현상을 일으켰다. 다카이치는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면 적자 국채 발행도 불사할 태세다. 이 승부수가 경제 성장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면 침체 위에 부채를 쌓은 미래를 직면하게 된다. 원·엔 동조화 현상이 계속되는 한 한국도 그 영향을 외면하기 어렵다.

김철오 국제부 차장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