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재(LG 트윈스)의 야구 인생은 매 순간이 ‘9회말 2아웃’과 같았다. 육성 선수로 출발해 2차 드래프트 이적생, 만년 대주자까지 내내 벼랑 끝에 서 있었다. 2022시즌을 마치고서는 은퇴 갈림길에 서기까지 했다.
3년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LG는 통합 우승을 두 차례 달성하며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신민재는 2루를 지키며 우승 주역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프리미어12에서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고, 이번 K-베이스볼 시리즈에서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최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그는 길었던 한 시즌을 떠나보내고 모처럼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타율 0.313(463타수 145안타), 87득점, 15도루로 데뷔 첫 규정타석 3할 타율을 달성했다. 타율과 득점 모두 9위에 오르며 커리어하이를 작성했다. LG는 2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섰다.
그의 활약은 국제무대에서도 이어졌다. 체코·일본과의 평가전에서 1번 타자로 나서 공격의 선봉에 섰다. 일본 원정에서는 타율 0.400(10타수 4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1차전 8회에는 단타를 2루타로 만드는 과감한 주루로 눈도장을 찍었다.
신민재는 올 시즌을 두고 “100점 만점에 80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3년 정도는 더 주전으로 뛰어야 100점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한국시리즈와 국제경기를 경험하고, 개인 기록도 발전했다.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올해의 영광까지는 많은 굴곡이 있었다. 그의 야구 인생은 ‘육성 선수 신화’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2015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그는 두산 베어스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첫해는 1군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이듬해 여름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입대를 택했다.
군 복무에 한창이던 2017년 가을 첫 전환점이 찾아왔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 유니폼을 입게 됐다. 신민재는 “LG에서 대주자 자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1군 출전이 간절했기 때문에 어느 자리든 맡겨만 준다면 해낼 자신이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었다. 2019시즌 개막 엔트리에 승선해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두 자릿수 도루에 성공했다. 2020년에는 32타석에 불과했지만, 타율 0.308을 기록했다. 그러나 대주자 요원이라는 한계는 분명했다. 출전 기회는 점차 줄었고, 2022년에는 세 타석이 전부였다. 시즌 종료 후 진지하게 은퇴를 고민했다.
신민재는 “2년 동안 2군에서 많은 경기를 뛰면서 오히려 자신감이 생긴 상황이었다”며 “컨디션은 좋은데 1군에 갈 수 없으니 답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아내와 두 딸이 있었다”며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각오가 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 두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2022년 가을 부임한 염경엽 감독이 마무리캠프에서 신민재를 눈여겨본 뒤 “대주자로 1군 자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신민재는 “감독님의 믿음에 독기가 생겼다. 딱 1년만 더 부딪혀보자고 다짐했다”며 “스프링캠프에서 훈련이 끝나도 밤마다 수백 번씩 스윙 연습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23년 여름, LG의 2루는 무주공산이었다. 기존 주전들이 차례로 부진하자 신민재에게 타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해 4월에도 단 한 타석만 소화했다. 절망적인 순간에 출전이 늘기 시작했다”며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매 타석에 모든 걸 쏟아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반기를 마칠 무렵 감독님이 ‘시즌 끝까지 네가 2루수 주전’이라고 말씀하셨다”며 “마음이 편해지니 야구가 더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해 신민재는 염 감독의 믿음 아래 타율 0.277(282타수 78안타), 47득점, 37도루를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굳혔다. 이듬해에는 타율 0.297(387타수 115안타), 78득점, 32도루로 풀타임 주전 도약에 성공했다. 신민재는 “팀이 선두권에 있었는데도 감독님은 나를 주전으로 쓰는 모험을 택했다”며 “책임감이 컸고, 믿음에 보답하겠다는 다짐뿐이었다. 염 감독님은 평생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위기는 있었다. 4월 한 달 동안 타율이 0.141까지 떨어지며 깊은 부진에 빠졌다. 기나긴 슬럼프의 끝은 악몽을 되새긴 2군행이었다. 신민재는 “감독님께서 2군에서 재정비 시간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며 “나 역시 타격을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LG의 선수층을 고려하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LG는 열흘만 자리를 비워도 입지가 흔들릴 수 있는 팀이다”며 “악착같이 타격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다시 1군에 복귀하니 감독님께서 ‘이제 너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고 반등의 배경을 설명했다.
LG 팬들에게 신민재는 특별한 존재다. 박종호(은퇴) 이후 수십 년간 공백이었던 2루 포지션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주전 자원이기 때문이다. 1994년 박종호가 LG에 처음이자 마지막 2루수 골든글러브를 안겼다. 신민재를 두고 ‘30년 만에 등장한 잠실 2루의 주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신민재는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팬들께 감사할 따름”이라며 “평소 수상 욕심은 없지만, 올해 골든글러브는 팀 역사와 연결돼 욕심이 난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늦게 핀 꽃인 만큼 그는 야구를 더 오래 즐기고 싶다고 했다. 신민재는 “해외 진출이나 개인 타이틀에 대한 욕심은 없다. 해마다 더 많은 안타와 수비 이닝을 쌓는 게 목표”라며 “단 하나 욕심내는 건 우승이다. 많을수록 좋다. 첫 우승이었던 2023년 가을 잠실을 뒤덮었던 노란 물결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야구 인생의 목표는 확고했다. ‘신민재만의 야구’를 만드는 것이다. 신민재는 “아버지께서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야구를 그만뒀다. 학창 시절 인터뷰에서 최정(SSG 랜더스) 같은 선수가 돼서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 나의 강점인 출루와 수비를 극대화해 ‘신민재만의 야구’를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