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투자 여건 마련해달라”… AI가 불러온 ‘금산분리’ 논란

입력 2025-11-21 00:13
최태원(오른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제2회 기업성장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회장은 “투자를 감당할 새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왼쪽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금산 분리 규제(산업 자본이 금융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 완화가 경제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동력 투자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관련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20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대규모 AI) 투자를 감당할 새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금산 분리를 원하는 게 아니다. 이 숙제를 해낼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국민의힘 정책 간담회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입법 지원이 필요하다”며 금산 분리 완화로 해석됐던 전날 발언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규제 완화 요구가 나오는 건 반도체 수요 대응 등 첨단 산업에 투입할 자금이 그만큼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은 120조원 수준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AI 붐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해 이를 감당할 생산 능력 구축에 드는 비용은 기존의 5배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SK그룹 한 해 설비 투자 금액(20조~30조원)의 최대 30배 수준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과 겨루는 중국은 기업을 규제하기는커녕 자본을 총동원해 지원하고 있다”면서 “(금산 분리 규제는) 대기업이 금융사를 사금고화할까 우려한 정부가 1980년대 만든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지금은 낡은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 완화를 통한 자금 조달 방법의 하나는 정부가 현행법상 금지된 지주사의 사모펀드(PEF) 운용사 지배를 허용하는 것이다. SK그룹을 예로 들었을 때 지주사인 SK㈜ 혹은 SK하이닉스 아래에 PEF 운용사를 설립한 뒤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자금을 유치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날 은행법학회가 ‘공정 거래와 금산 분리 제도의 정책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SK그룹 안에 SK하이닉스보다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는 계열사는 없다”면서 “SK하이닉스가 대규모의 투자를 해야 한다면 주식이나 채권 등을 발행해 자본 시장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도 “SK하이닉스(혹은 그 자회사)가 PEF 운용사가 된 뒤 외부 자금을 끌어와 하이닉스에 직접 지분 투자를 한다면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순환 출자를 초래하게 된다. 지주사 규율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면서 “금산 분리 규제를 무리하게 완화하지 말고 기업이 자체 재원이나 금융권 차입을 통해 필요 자금을 조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진욱 김윤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