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가 지난해 화석 연료 수출을 돕는 데 12조원이 넘는 돈을 내준 것으로 집계됐다. 이재명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환경 싱크탱크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산은·수은·무보 3곳이 지난해 내준 에너지 관련 수출금융은 총 15조7670억원이다. 이 중 4분의 3에 육박하는 12조1280억원이 화석 연료에 쓰였다. 반면 재생 에너지 몫은 3조6390억원어치에 그쳤다. 세 기관이 최근 5년(2020~2024년)간 화석 연료에 내준 수출금융은 총 45조6170억원으로 연평균 9조원을 넘는다.
세 기관은 정부가 2020년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이래 이를 따르겠다는 두루뭉술한 선언만 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나 이행 로드맵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산은은 녹색금융 소개 자료와 여러 보고서 등을 통해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목표에 부응해 녹색금융을 확대하겠다’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로드맵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넷 제로(Net Zero) 2050 시나리오 등을 참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상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공식 선언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중간 목표,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 연료 부문별 단계적 제한 계획을 담은 로드맵은 없다.
수은의 경우 문재인정부 당시였던 2021년 세운 2050 탄소 중립 자산 포트폴리오 로드맵을 윤석열정부 들어 폐기했다는 주장이 올해 국정 감사에서 제기됐다. 수은은 “로드맵을 빠르게 설정하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재정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무보도 홈페이지와 환경·사회·지배 구조(ESG) 핸드북 등을 통해 ‘탄소 중립 내재화’ 등 정책 방향만 제시했을 뿐 화석 연료 부문별 단계적 제한 계획 등 로드맵은 없는 상황이다.
세 기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1년 석탄 화력 발전에 대한 공적 수출금융 지원을 금지하면서 탈석탄이 국제 규범으로 떠오르자 우회로로 가스와 석유를 택해 화석 연료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세 기관이 가스와 석유에 조 단위의 수출금융 지원을 이어가는 것은 이를 제한할 탄소 중립 관련 계획과 로드맵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공적 금융기관이 기후 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정부가 금융 배출량 목표 관리제 도입 등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