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안지구에 속한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은 성탄을 앞두고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 일부 거리엔 성탄 트리가 장식됐지만 전쟁의 상흔은 성지의 활기를 앗아갔다. 관광이 끊기며 현지인들의 생계가 무너졌고 무슬림 다수 사회 속에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전쟁의 공포와 신앙적 소수자로서의 압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1호 한국 선교사로 35년째 사역 중인 강태윤(66) 선교사는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인터뷰를 갖고 “성탄을 앞둔 베들레헴 주민들은 생존을 위한 고통을 겪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꺼져가는 성탄의 불빛을 함께 밝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최근 이스라엘 접경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무력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20여명이 사망했다. 서안지구에서는 전날 흉기 테러가 발생, 이스라엘인 4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외교부는 서안지구에 적색경보를 발령해 출국을 권고하고 있으며, 가자지구는 흑색경보 지역으로 지정돼 여행이 전면 금지됐다.
강 선교사는 “올해 베들레헴의 성탄은 침묵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모든 것이 멈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지순례 관광업은 대부분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 운영하고 있는데 성탄 시즌은 1년 생계를 버틸 자원을 마련하던 시기였다”며 “2년 가까이 문을 닫으면서 생존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절벽은 이민으로 이어졌다. 강 선교사는 “그리스와 키프로스 등으로 떠나는 현지 기독교인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베들레헴 개신교인은 200~300명에 불과한데 이들이 빠져나가면 도시의 종교 지형이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비어 있는 집은 곧 무슬림 가정이 채우게 되고 명목상 기독교 도시였던 베들레헴의 정체성도 무너질 수 있다”며 “이는 단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역설했다.
현지 교회도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오랜 전쟁과 갈등으로 예배와 사역이 정상화되지 못했고 교회의 이웃 돌봄 사역도 상당수 중단됐다. 강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고통 속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성탄을 함께 세워주면 좋겠다”며 “팔레스타인 교회가 ‘우리도 세계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선교는 한국교회 안에서 여전히 낯선 영역으로 남아 있다. 베들레헴에는 팔레스타인 유일의 개신교 신학교인 베들레헴바이블칼리지와 여러 개신교회가 존재하지만 많은 이들의 인식 속에는 ‘이슬람 도시’라는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 강 선교사는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가 하마스(이슬람 무장정파)가 아니며 고대 블레셋도 아니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웃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고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인 강 선교사는 1990년대 걸프전과 인티파다 정국 속에서 사역을 시작해 유치원과 한국문화원, 선교센터 등을 세우며 선교 활동을 해왔다. 2007년 매입한 ‘보아스의 뜰’은 중동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잇는 허브가 되길 꿈꾸며 착공했으나 15년째 미완성 상태다. 그는 “팔레스타인은 한국교회에서 선교 대상으로조차 인식되지 못한 적이 많았다”면서도 “그러나 주님은 필요한 순간마다 과부의 두 렙돈 같은 도움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강 선교사는 베들레헴 사역을 성경적 선교의 중요한 열쇠라고 정의했다. 그는 “로마서 11장 말씀처럼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을 시기하게 한다면 팔레스타인 선교가 바로 그 열쇠”라고 했다. 이어 “베들레헴은 복음의 시작점이지만 동시에 버려진 땅끝”이라며 “팔레스타인이 복음으로 변화돼 이스라엘 선교를 열어갈 민족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