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교단들의 부끄러운 선거 풍토

입력 2025-11-21 00:39

수십억원 오가는 총회장 선거
돈 없으면 출마조차 못 해

정치에선 예전에 사라졌는데
교회는 왜 아직도 못 하나

젊은 세대 품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결단해야

수도권의 어느 대형교회 원로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인품도 훌륭하고, 교회도 성장시킨 분이다. 현역 시절 주변에서 총회장 선거에 출마하라고 강하게 권했다. 총회장은 교단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이 목사님 교회의 장로들도 “우리 목사님은 당연히 총회장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목사와 장로들이 함께 하는 회의(당회)가 열렸다. 한 장로님이 말했다.

“목사님, 우리 교회와 교단을 위해서 제발 총회장 선거에 출마하십시오. 저희 장로들이 ○억원을 준비하겠습니다. 교회 헌금이 아니고 저희 장로들이 개인적으로 모은 돈입니다. 목사님의 깨끗하신 성품을 저희가 잘 압니다. 어디 썼는지 묻지 않을 테니 선거 비용으로 쓰십시오. 더 필요하면 말씀해주십시오. 저희 장로들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장로님들 감사하지만, 그 금액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동그라미가 하나는 더 붙어야 합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다들 큰 시험에 들 겁니다. 선거에 나가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그 금액을 듣고 장로들도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교단별로 차이는 있지만 투표권을 가진 총대(총회 대의원)는 1000~3000명 규모다. 선거에 출마했던 한 목사님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의원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하고 밥을 사고 선물을 건네면 1인당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 써야 한다. 차비와 모임 비용까지 생각하면 수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총회장 선거는 보통 지역별 차례가 있다. 올해는 수도권, 내년에는 영남, 내후년은 호남, 다음엔 충청과 강원 지역에서 후보가 나오는 식이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다시 차례가 오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60세가 넘어야 주변에서 추천하는 관례를 생각하면 출마 기회는 일생에 한두 번뿐이다.

투표가 열리는 총회 때는 학교와 지역을 연고로 크고 작은 모임이 열린다. 후보들이 모임을 찾아가지 않으면 서운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밥을 사더라도 돈봉투를 준비하지 않으면 외려 표가 떨어진다. 이런 풍토를 바꾸려고 어떤 교단은 아예 총대 숫자를 확 늘렸는데, 결국 선거 비용만 키웠다는 핀잔을 받았다. 총회장 출마를 준비하는 어느 목사님은 “상대방은 10억원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억원뿐”이라고 기자에게 돈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총대라고 해서 다 돈봉투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인물과 정책을 보고 소신껏 투표하려는 깨어 있는 총대도 많다. 그런데도 이런 얘길 꺼내는 이유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심한 선거 풍토를 바꿔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점만 지적한다.

첫째, 관례라기엔 심각하다. 밥 사고 돈 쥐여줘야 이긴다는 게 상식처럼 통용된다. 돈봉투를 사절하는 총대들조차 이번에는 후보들이 돈을 얼마나 썼다는 소문에 귀 기울인다. 어떤 총대들은 아예 몇 십억원 준비하지 않으면 출마할 생각도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과거에는 부끄러워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당당해졌는지 모르겠다.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보기에 한심하기 그지없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이고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도 후보가 밥을 산다거나 선물을 주는 식의 ‘고무신 선거’는 이미 예전에 근절됐다. 40대 이하는 고무신 선거가 무슨 말인지도 모를 것이다. 금품을 건넨 정치인은 직을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 출마하기조차 어렵다. 선거 비용은 대부분 정책을 만들고 홍보하는 일에 쓰인다. 그래서 돈 없는 젊은 정치인도 훌륭한 비전을 내놓고 도전할 수 있다. 누구 정책이 더 좋은지를 놓고 겨루기 때문에 정치가 깨끗해지고 사회가 발전하는 데 이바지한다. 정치는 이 정도까지 깨끗해졌는데, 교회는 왜 못하나.

두 번째 이유가 여기 있다. 교회와 교단의 발전을 논의하고 실행하기 위해 쓰일 수고와 자금이 해마다 밥값과 돈봉투로 누군가의 호주머니 속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선거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 다시 선거 비용 규제와 사용 내역 공개 같은 최소한의 원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교회가 젊은 세대를 품고 부흥을 말하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

김지방 종교국 부국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