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흘렀다. 304명의 희생 앞에서 국민들은 처절한 절망감을 느꼈고, ‘다시는 이런 인재(人災)가 없도록 하겠다’는 사회적 다짐이 이어졌다. 수많은 법과 제도가 정비됐지만, 시간만 지났을 뿐 변한 게 없다. 우리 사회의 안전 시계는 여전히 멈춰 서 있거나 매우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세월호 이후에도 비슷한 인재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19일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대형 카페리 여객선 좌초 사고다. 해경은 주요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에서 협수로 구간 내 자동 운항 전환 탓에 여객선과 무인도 간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항해 책임자는 휴대전화를 보느라 수동으로 운항해야 하는 구간에서 자동 항법 장치에 선박 조종을 맡겼다고 한다. “뉴스를 검색하다 조타 시점을 놓쳤다”니 어처구니없다. 협수로에서는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해 통상 선박은 자동 항법 장치에 의존해 운항하지 않는다.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전형적인 인재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선박은 방향 전환 시기를 놓쳤고, 무인도로 돌진해 선체 절반가량이 걸터앉는 사고로 이어졌다. 선장은 사고 당시 근무 시간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조타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것 또한 매뉴얼 위반이다. 선박이 협수로 등 위험 구간을 지날 경우 선장은 조타실에서 직접 지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런 허술한 시스템에도 인명 피해가 단 1명도 없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 참사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11년 동안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다짐들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안전한 사회는 단 한 번의 혁신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 순간 재난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작은 위험 신호에도 귀 기울이는 지속적인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고질병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