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누구나 특별한 꿈을 꾸었다. 수능을 치른 뒤로만 돌아가 봐도, 무지 평범해 보이지만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엄마와 아빠가 권했을 때 내가 거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게 목표인 듯 살아온 시간이 꽤 됐다. 마치 드라마 속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아마도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난한 선택을 하면서도 특별한 이들의 삶을 흘끗 바라볼 때마다 부러움은 여전히 꿈틀댄다. SNS가 일상이 된 지금은 비교가 더욱 쉬워졌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이번 생은 글렀다’는 체념으로 귀결되곤 한다. 이런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나와 같은 수많은 ‘평범이’들이 비슷한 좌절을 느끼며 어제를,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 같아 지루하고, 때론 좌절감을 느끼는 갑남을녀에게 내가 요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그들은 처음부터 비범해지리라 꿈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피하고 싶었던 상황 속에 놓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결핍 속에서 무력감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서 특별하게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백혈병을 앓는 것도 모자라 치료 과정에서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모두 잘라야 했던 김단영씨가 그랬다. 그는 사라진 손가락 대신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고백했다. 그림을 그려본 적 없던 그는 거의 남지 않은 손가락 마디에 펜을 가까스로 끼워 글씨 쓰기를 연습하다가, 지루해질 무렵 색연필을 잡아 하루하루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반복된 훈련은 그를 단련시켰고, 결국 여러 차례 상을 받는 민화 작가로 성장하게 했다.
누군가 몸을 뒤집어 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 장애 딸을 키우는 엄마 김은혜씨가 있다. 힘든 육아에 더해 난생처음 겪는 장애가 있는 자녀와 동행하는 삶은 어려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모습에 머물지 않으려고 SNS에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삶은 언제나 힘듦 속에 기쁨이 함께 있었고, 그는 그 순간을 포착해 세상에 알렸다. 거창한 포부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며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며 개인 전시회를 여는 작가로 거듭났다. “기자님 덕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라는 그의 말은 작은 기록이 특별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기간제 교사의 도전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합창단을 만들었던 채윤미씨는 요즘 한국에서 가장 바쁜 음악 선생님이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오직 자신이 시작한 작은 실천 덕분이었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세상이 덧씌운 결핍에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함께 노래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하나로 합창단을 운영했고, 그 영상은 감동을 불러일으켜 방송에도 소개됐다. ‘일반인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까지 출연하게 됐다. 기사로 처음 소개한 일이 고맙다며 한번 보자고 해 만났을 때, 채씨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졸업생, SNS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합창 등 새로운 시도를 말하며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엇이 먼저였을까. 어려움이 생겨 그것을 돌파하려는 노력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평범치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을까. 곰곰이 내린 결론은 둘 다 아니었다. 그들이 스스로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됐다.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작은 겨자씨만 한 믿음을 품고, 크기와 상관없이 생명력을 피워내려는 노력이 결국 꽃망울을 터트렸다. 손끝에 놓으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겨자씨가 우리 삶 속에도 이미 심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미 특별한 존재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신은정 미션탐사부 차장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