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부산에서 특강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정류장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인근 학원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었다. 하나같이 검은 점퍼에 큼직한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한 아이가 편의점에서 호빵을 사 와 반을 갈라 친구에게 내밀며 말했다.
“야, 침 묻히지 말고.”
말투는 거칠었지만, 호빵을 떼어주는 손짓은 조심스러웠다. 조용히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입천장을 데어 가며 김이 오르는 호빵을 한입씩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유희경 시인의 시 ‘도넛을 나누는 기분’(창비교육·2025)이 문득 떠올랐다.
그 시 역시 밤의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된다. 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한 아이가 도넛을 반으로 나눈다. 시인은 그 장면을 “집으로 돌아가려 함과/ 집으로 가고 싶지 아니함처럼”이라고 쓴다. 마음도 그렇다. 생활이 가리키는 방향과 마음이 기울어가는 방향이 어긋나면서 벌어지는 약간의 틈. 분명 반씩 나누었는데도 어느 쪽이 더 큰지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때가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정확히 나누었는지 묻지 않기”라는 문장이 오래 머문다. 우정은 공평함을 애써 증명하기보다 함께 나누고 있다는 사실 쪽으로 다가가는 마음일 것이다.
이어서 몇 가지 규칙들이 나온다. “어디서 났는지 묻지 말기/ 마실 거 없는지 묻지 말기/ 밤하늘에 별이 있다고/ 사기 치지 말기.” 친구의 사정을 캐묻지 않고, 없는 낭만을 보태지 않는 태도. 궁금해도 바로 질문으로 바꾸지 않고, 꾸미고 싶은 말을 한 박자 늦춰 삼키는 다정한 거리감이 있다.
버스는 오지 않고, 연착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이들은 서로를 툭툭 치며 웃는다. 언젠가 이 밤도 그들에게 하나의 장면으로 남을까. 호빵의 반쪽과 도넛의 반쪽이 “밤의 버스 정류장”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식어 가는 기억으로 남을까. 그런 밤은, 어쩐지 조금 쓸쓸하고 달콤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