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저주 아냐…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

입력 2025-11-21 03:05
‘팀 켈러의 일과 영성’ 저자 팀 켈러 미국 리디머장로교회 설립목사가 지난 2018년 서울 서초구 횃불선교회관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민일보DB

한때 20~40대 국내 직장인 사이엔 ‘파이어(FIRE)족’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습니다. 노후 자금을 가급적 빨리 마련해 은퇴 시기를 앞당기고 하고픈 일을 하며 사는 게 이들의 지상 목표인데요. 여기엔 하루라도 빨리 원치 않는 노동에서 벗어나고픈 직장인들의 심리가 반영됐습니다. 한데 미국 리디머장로교회 설립목사인 팀 켈러는 이런 시류와 정반대의 노동관을 주창합니다. “일은 하나님이 설계한 낙원의 일부이자 그분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국내에 2013년 소개된 ‘팀 켈러의 일과 영성’(두란노)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하기 싫어’란 생각이 들 때마다 노동이 죄의 대가로 임한 저주란 생각이 떠오를 수 있지만, 일 자체는 저주가 아니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일하도록 창조됐고, 일로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일로 묘사합니다.(창 2:1~3) 최초의 인류인 아담도 땅을 일구고 피조물의 이름을 짓는 등의 일을 맡았습니다.(창 2:15, 19) 이들 본문을 근거로 저자는 노동을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봅니다. 실제로도 인간은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실감과 공허감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에게 노동이 소중한 또 다른 이유는 “일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직업 선택 전 ‘뭘 해야 돈 많이 벌고 출세할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을 의식하며 최대한 타인을 섬길 수 있을까’를 자문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도 모든 노동은 본질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이라고 덧붙입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을 경계합니다. 직장인보다 목회자가 더 성스럽고,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보다 윤리적이라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책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뉴욕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들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과 세상을 섬기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최근 이 책으로 한 설교에서 “우리 각자의 자리는 곁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합력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라고 주님이 불러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종교를 떠나 주님이 크게 쓰는 이들과 손을 맞잡고 한없이 유익한 일들을 이뤄나가라”는 주문입니다.

책 서문에는 ‘반지의 제왕’ 저자 JRR 톨킨의 단편 ‘니글의 이파리’ 줄거리가 소개됩니다. 불후의 명작을 꿈꿨으나 이파리 한 장만 그린 채 숨진 한 화가의 얘기입니다. 그는 “누구나 영향력 있는 삶을 살기 원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에게 이를 온전히 이룰 힘이 없음을 알고 있다”며 “이런 면에서 우리 역시 너나없이 니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선한 수고는 지극히 사소한 것일지라도 영원무궁한 가치가 있다고 약속하는 게 기독교 신앙”이라며 “기껏 나뭇잎 한 장을 그리더라도 그 나라를 실현해 가는 일이란 걸 믿자”고 말합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수고하는, 일자리를 준비하는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니글 같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그 수고를 아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