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기는 하다. 같은 날(11월 17일) 출간된 두 권의 책은 모두, 비록 의사의 선의에서 비롯됐지만 결국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현재 의료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다. ‘진단의 시대’는 과잉 진단의 위험성을 파헤치고, ‘중독을 파는 의사들’은 중독성 약물의 과잉 처방을 경고하고 있다. 두 책 모두 현직 의사들이 실제 경험을 토대로 쓴 내부 비판이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먼저 ‘진단의 시대’가 제시하는 통계부터 보자. 지난 25년 동안 미국에서 천식 진단을 받은 사람은 48%나 증가했다. 미국의 암 환자 수는 2024년에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 당뇨병 환자 수는 5억3700만명이고, 그 수치는 2045년까지 7억8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얼핏 보면 우리가 예전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건강이 상당히 나빠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딱히 질병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경계선에 놓이는 증상을 질병이라고 확고히 진단을 내리고, 정상적인 범위에 놓인 차이를 병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 2003년 미국 당뇨병협회가 당뇨 전 단계의 기준이 되는 공복 혈당 수치를 리터당 6.1밀리몰에서 5.6밀리몰로 낮추면서 당뇨 전 단계에 속하는 사람의 수는 하룻밤 사이에 최소 2~3배가 늘어났다. 저자는 “우리는 점점 더 병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것을 병이라고 치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잉 진단은 ‘가치가 낮은 의료’다. “그냥 두면 저절로 나을 정도로 증상이 사소한 사람을 정기적으로 검진하고, 절대 진행되지 않을 병을 치료하는 데 돈을 쓴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비용과 효과라는 경제적 논리로 의료 시스템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진단 주도의 문화가 주는 혜택과 그 피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즉 더 나은 의료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의 문제의식을 파고들면 과잉 진단과 맥이 닿아 있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통증의 유용한 기능에 주목했다. 통증은 무엇을 피해야 하고, 피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경고 시스템이었다. 또한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는 격언처럼 통증은 정신적 성장의 기회로 여겨졌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의사는 통증이 치유 과정의 바람직한 요소로 간주했다. 특히 수술 중 통증은 심혈관 기능을 활성화하고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통증은 ‘피해야 할 저주’이자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됐다. 통증의 기준이 전례 없이 낮아진 상태에서 사소한 통증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중독성 처방 약물 처방 약물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감정, 인지, 기질의 개인차를 갈수록 더 질병으로 규정하려는 경향”도 중독성 처방 약물의 대유행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016년 미국에서 출판된 책이 뒤늦게 한국에 소개된 것은 과잉 처방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번역자들의 판단 때문일 것이다. ‘중독성 처방 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이라는 이름으로 11명의 의사가 뭉쳐 번역에 동참했다. 역자 중 한 명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의 외침은 되새길 만하다. “약은 수영 초보자에게 필요한 킥 판이자, 자전거를 처음 탈 때 부착하는 보조 바퀴에 가깝다. 의사의 역할은 그런 도구에 영원히 의존하게 만드는 대신 언젠가 그 도움 없이도 스스로 헤엄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