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놓고 중·일 갈등이 격화되고 있지만 양국 관계를 복원할 물밑 대화는 사실상 전무하다. 대중국 외교를 중시하는 공명당이 다카이치 내각 출범 직전에 집권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이탈한 데다 의원 외교의 ‘키맨’까지 부재해 소통 채널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할 가능성도 낮아 중·일 갈등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일 “일본과 중국 간 의원 외교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요직에서 물러나 양국의 대화 창구가 좁아졌다”며 “정부 간 문제를 보완하는 소통 수단 중 하나인 의원 외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중국과 교류하는 일본의 초당파 의원 모임인 ‘일중우호의원연맹’(이하 의원연맹)의 모리야마 히로시 회장은 지난달 출범한 다카이치 내각에서 요직을 맡지 못하고 비주류로 밀렸다. 모리야마 회장은 ‘지중파’인 전임 이시바 시게루 내각에선 자민당 간사장으로 기용됐다. 다카이치 내각과 연결 고리가 약한 모리야마 회장 체제의 의원연맹으로는 중·일 의원 외교를 복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연맹의 한 간부는 “중국이 모리야마 회장을 다카이치 총리 특사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내 ‘일본통’도 사라진 것으로 관측된다. 의원연맹의 소통 창구이자 ‘지일파’인 류젠차오 전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지난 7월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가 지난달 경질됐다. 그사이 류 전 부장은 중국 당국에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중국공산당은 ‘당대당’ 외교를 책임지는 대외연락부의 새 수장으로 지난달 류하이싱 부장을 선임했다.
닛케이는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 당시에도 의원 외교가 작동하지 않아 양국 간 대립이 장기화됐다”며 “2014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까지 (갈등은) 2년간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을 계기로 자민당이 공명당과 26년 만에 결별하고 강경 보수 성향의 유신회와 새로운 연립 여당을 구성한 것도 중·일 관계 복원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자민당 총재로 취임한 직후 공명당과의 연정이 붕괴되자 유신회를 새로운 파트너로 끌어들여 집권을 확정했다.
‘평화의 당’을 표방하는 공명당은 연립 여당 시절 방중단을 정기적으로 파견해 중국 정부 지도부와 소통했다. 반면 유신회는 중국 내 인권 문제를 수시로 비판하며 대만과 안보에서 밀착하는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정치 지형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만 관련 발언을 철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0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 의원이 발언 철회 의향을 묻자 “철회하거나 취소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중국이 여러 산업군에서 일본을 압박하고 나선 가운데 실질적인 타격을 입힐 카드는 희토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중국 정부의 일본 여행 자제 권고로 방일 관광객 감소가 우려되지만 일본 정부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자동차 모터와 반도체에 필요한 희토류 수출 통제 여부”라고 짚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