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수조원대 국제소송에서 적법절차(Due process)의 원칙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완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판정에는 우리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하나금융·론스타 간 국제상업회의소(ICC) 상사중재 판정문이 주요 증거로 채택됐는데, 이는 국제법상 근본규범인 적법절차 위반이라는 점을 집중 공략한 전략이 유효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1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ICSID 취소위원회의 120여쪽 분량 판정문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정홍식 국제법무국장은 브리핑에서 “론스타가 애시당초 청구했던 천문학적 청구금액은 약 6조9000억원이었는데 이를 0원으로 만든 쾌거”라며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절차에서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이 취소된 최초의 사례이고, 중재판정의 취소 절차까지 가서 전부 방어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앞서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가 46억7950만 달러(약 6조8634억원)를 배상토록 중재해 달라는 ISDS 소송을 ICSID에 제기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인 뒤 2012년 하나금융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정부(금융위원회)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ICSID는 2022년 8월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인정해 손해배상청구액의 4.6%인 2억1650만 달러(약 2815억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이에 불복한 정부는 2023년 9월 ICSID에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소 신청을 하자 정치권 등에서는 ‘바늘구멍 뚫기’라는 비관론이 적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찾은 돌파구는 별건인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이었다. 정 국장은 “정부는 ICC 사건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전혀 보장받지 못했으므로 판정부가 별건 ICC 판정 내용을 고려해선 안 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고 전했다.
중재인 3명 중 핵심인 의장 중재인이 갑자기 사망하는 변수도 있었다. 새 의장 중재인은 증인신문도 거치지 않은 채 문제의 ICC 판정문을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주요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정부는 이때부터 적법절차 위반을 부각하는 전략으로 전환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먹혔다. 정 국장은 “취소위는 ICC 판정문을 기초한 원 판정 관련 부분은 모두 연쇄적으로 취소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 국장은 법무부의 ISDS 대응팀 소속 검사들의 활약도 강조했다. 중앙대 로스쿨 교수를 지낸 그는 “국제법무국에 10명 남짓 검사들과 일해 보니 아주 소중한 공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일각에서는 검사를 법무부에서 내보내야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론스타 측은 추가적인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취소위 판정에는 불복 절차가 없어 ICSID에 새로 중재판정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정 국장은 “정부가 승소한 4.6%에 대해 론스타가 2차 중재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구자창 이서현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