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인공지능(AI) 투자 거품론에 휩싸여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약세를 보이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2000년대 ‘닷컴버블’(인터넷 기업 투자 붐) 과 같은 폭락 사태를 맞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기업 투자가 크게 늘고 미국 기업의 주가가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요 있는 공급이 이뤄지고 건전한 성장주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진단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닷컴버블이 꺼졌던 2000년 3월 미 나스닥종합지수는 2002년 10월까지 약 940일간 고점 대비 78% 하락하면서 역사상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벤처기업이 많았던 한국 코스닥도 2000년 3월 10일부터 12월 26일까지 81% 급락했다. 폭락이 발생하기 전 투자자들은 1990년대 말부터 회사 이름에 ‘닷컴’(.com)이 붙은 기업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는데 이들 기업의 부실이 불거지자 투매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기업 부실은 과도한 투자로 현금흐름이 악화하고 부채가 증가하면서 취약성이 심화한 결과였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AI 거품론을 우려하는 배경도 유사하다.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AI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기대에 못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닷컴버블 때보다 높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버블을 우려할 만큼 고평가된 건 아니라고 분석한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닷컴버블 때는 PER이 50배 이상인 종목과 20배 미만인 종목들이 늘면서 그 사이에 있는 건전한 성장주 비중이 적었다”고 짚었다. 통상 시장에서는 PER이 20~50배인 기업을 건전한 성장주로 보는데 현재는 그 비중이 전체의 46%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에 기반을 둔 공급이 이뤄지는 점도 닷컴버블 때와 다른 점이란 분석도 있다. 이민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닷컴 버블 때는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네트워크와 광케이블 등의 공급이 과잉 상태였다”며 “현재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 등 실질적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등에서 AI 관련 매출이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단기 조정과 붕괴를 구분하려면 경기와 이익 사이클을 봐야 하는데 여전히 확장 국면이면 조정 폭은 -10~-15%를 크게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는 3929.21로 마감해 전고점 대비 6.92% 하락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