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출범한 지 20주년 되는 해다. 예술위 출범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 정책 기조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이른바 ‘팔길이 원칙’ 천명에서 비롯됐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가 문을 닫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됐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사 대신 영화인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한 독립적 지원 기관인 위원회 체제로 전환된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독임제로 운영되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진흥원)의 예술위 전환이 완료됐다.
기초예술 지원 기관인 예술위는 팔길이 원칙을 처음 제시한 영국예술위원회를 벤치마킹해 명칭과 운영 전략 등을 참고했다. 다만 영국예술위의 주요 미션 중 하나인 예술교육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위가 출범한 2005년 한국예술교육진흥원을 새로 설립해 관련 업무를 위임했다. 예술위는 최대 15명(위원장 1명 포함)의 위원을 두며, 위원의 임기는 3년(1차례 연임 가능)이다. 그런데 예술위 독립성이 문예진흥법에 규정돼 있지만, 문체부와의 관계에서 실질적 자율성을 갖지 못한 게 현실이다. 물론 공공기관인 만큼 상급기관인 문체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술 지원과 관련해 사업부터 예산까지 문체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는 산하기관 이상의 위상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은 예술위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우선 예술위의 위원 구성부터 사실상의 정치적 개입이 이뤄지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파적으로 위원이 선정되는 게 그 증거다. 여기에는 위원의 임면은 물론 위원추천위원회까지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견제 장치가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문체부 장관이 위원장을 임명하던 방식이 위원들의 호선으로 바뀌었지만, 이미 위원 구성에 문체부의 의도가 반영된 만큼 큰 의미가 없다.
예술위가 문체부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재원 구조다. 영국예술위의 연간 예산은 크게 문화미디어스포츠부로부터 받는 국고와 국립복권기금 전입금으로 충당된다. 그리고 그 비율은 국립복권기금 전입금이 국고보다 2배나 많다. 국립복권기금의 경우 수익금의 20%가 예술 분야로 법정 배분된다. 이에 비해 한국 예술위의 재원 구조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문예진흥기금이 매우 적고, 매년 문체부로부터 받는 전입금이 압도적으로 많다. 2004년 5272억원에 달하던 문예진흥기금 적립금은 지속적인 인출로 인해 올해 1180억원 정도 남은 상태다.
올해 예술위 예산은 문예진흥기금과 골프장 수입 등 자체 수입 937억원, 복권기금 전입금 등 정부 수입 3977억원, 기금 운용 등 여유자금 회수 863억원을 합한 5777억원이다. 영국예술위가 복권기금을 문화 인프라 구축과 순수 예술 지원에 사용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문화 향유에만 사용하도록 정해진 것이 큰 차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전입되는 일반회계, 체육기금의 경우 법적 근거 없이 매년 심의를 통해 정해지는 것도 예술위의 문체부 의존을 심화시킨다. 한편 예술위 자체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문화 일반을 빼고 장르별 한 명씩 위원을 뽑다 보니 각 장르의 이해를 대변하는 장르 이기주의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위원이 해당 장르 안에서 지원 심의 문제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예술위는 지난 13일 전남 나주에 있는 본부에서 내부 구성원들과 일부 전직 간부들이 참여한 가운데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직원 중심의 내부 행사도 필요하지만, 예술계에서는 예술위가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개선책을 내길 기대한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