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모펀드 론스타에 완승한 국제소송의 분수령은 지난 1월이었다. 2022년 일부 패소해 4000억원을 물어줄 상황에서 판정 취소를 신청했고 그에 따른 구술심리가 1월 런던에서 사흘간 열렸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 절차는 단심제여서 판정 취소 요건이 극히 제한돼 있는데, 당시 ICSID 위원들이 정부 측 주장에 많은 질문을 던지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좁은 관문을 정확히 겨냥해 논리와 근거를 제시한 것이 당초 판정을 완전히 뒤집는, 국제소송에서 매우 이례적인 쾌거로 이어졌다.
올해 1월은 계엄과 탄핵에 국가 리더십이 실종된 시기였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고 장관들도 유명무실했다. 정쟁과 분열의 혼란 속에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 이 소송을 진행해온 법무부 국제법무국 공직자들은 책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부를 구성하는 공직자는 우리 몸의 세포에 빗댈 수 있을 텐데, 정부가 멈춰 선 듯했던 암울한 시기에도 그 세포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음을 소송 결과가 확인해줬다. 대통령 탄핵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도 국가 기능을 지켜내고 성장해온 배경에 이렇게 중심을 잡은 공직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불거져 13년을 끌어온 소송이었다. 여러 정부를 거쳤으니 정파를 떠나 국가적 문제인데도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정쟁이 끼어들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 패소 직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판정 취소 신청을 추진하자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비난하고 반대했다. “윤석열정부 경제라인 인사들이 이명박정부에서 (론스타 소송의) 단초를 제공했던 장본인”이라며 “뒤집힐 가능성은 제로” “승산 없는 희망고문” “소송비만 불어난다”고 했다. 앞장서 그리 주장했던 인사는 지금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을 하고 있다.
혈세 유출을 막으려는 노력마저 이렇게 폄하한 건 ‘반대를 위한 반대’의 진영 논리였고, 취소 신청을 통해 완승하자 거꾸로 “이재명정부의 쾌거”라며 자찬하고 나섰다. 국민의 편에서 논해야 할 중대사를 내 편 네 편 따져서 다루는 정치의 민망한 단면이 여실히 드러났다. 만약 이런 정쟁에 묻혀 취소 신청이 무산됐다면 판정을 바로잡을 기회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대결 논리 탓에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 실제 무산된 사례도 많을 것이다.
정부·여당이 ‘공직사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편 가르기가 또 끼어든다면 살아 움직이는 정부의 ‘세포’를 제 손으로 죽이는 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