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준 기자의 교회 아재] 약함이 강함되는 자리에서

입력 2025-11-22 03:07
광주광역시 남구 기장 양림교회에서 바라본 붉은빛 예장통합 양림교회(오른쪽)와 황토빛 예장합동 양림교회(왼쪽).

국민일보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는 매주 수요일 ‘국민가족 수요예배’가 열린다. 이날만큼은 사내 크리스천들이 일터에서의 하루를 예배로 시작한다. 나는 지난 7월부터 이 예배의 찬양 인도를 맡았다. 중학생 때부터 해 온 일이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오래 쉬었기에 여전히 긴장감이 가시지 않는다. 동료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시작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망신이야’ 같은 생각들이 마음 한켠에 늘 존재한다.

사고는 지난주에 일어났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은혜로다’를 막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기타는 먼저 흘러나가는데 첫 음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불과 몇 초였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색하게 튀어나온 음은 코드와 맞지 않았다. 찬양 인도를 하며 가장 두려웠던 장면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그날처럼 큰 소리로 찬양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마치 첫 음을 잡아주듯, 혹은 당황한 찬양 인도자를 격려하듯, 예배 공간 전체에 힘 있는 목소리가 퍼졌다. 내가 만든 빈자리를 회중의 목소리가 메우는 장면을 보면서 ‘약함이 강함된다’(고후 12:10)는 말이 추상적 문장이 아니라 내 삶 속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실감했다.

며칠 뒤 광주 남구 양림동 선교 유적지를 찾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약함이 강함된다’는 말을 떠올렸다. ‘광주의 예루살렘 거리’라 불리는 곳. 반경 500m 안에 이름이 같은 세 개의 교회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양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소속 양림, 예장합동 소속 양림. 뿌리는 하나인데, 역사 속에서 셋으로 나뉜 공동체다.

양림교회들의 시작은 1904년 성탄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은 당시 자신의 임시 사택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광주에서 드려진 첫 공식 예배였다. 당시 양림동은 어린아이의 시신을 버리던 풍장터였지만 선교사들은 이 언덕에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며 지역 전체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죽음의 자리가 조금씩 생명의 마을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은 한국교회 전체를 뒤흔든 신학 갈등을 피해 가지 못했다. 53년 장로교단이 분열되며 양림교회도 기장과 예장으로 갈라졌고, 61년 예장 내부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통합과 합동으로 다시 나뉘었다. 세 교회는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교단 소속이 된 셈이다. 분립 초창기에는 감정싸움도 적지 않았다. 이웃끼리 마주 보고 살아야 하는 동네였기에 갈등은 교회 안팎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양림동에는 다른 분위기가 싹텄다. 정작 분열의 후손 세대는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교회는 달라도 학교는 같았고 동창이었고 친척이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이유 자체가 사라진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양림동 전체가 겪은 변화였다. 광주는 최근 몇 년간 청년 유출이 가장 뚜렷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구가 줄며 동네의 활기도 약해졌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전처럼 각 교회가 경쟁할 여력도 사라졌고 지역 전체를 위해 협력해야 하는 필요성이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97년 세 교회의 장로들이 먼저 만나 ‘양림교회 협의회’를 만들었다. 이후 매년 연합찬양예배와 명절 연합봉사, 성탄 점등식 등 지역을 위한 사역이 이어졌다. 2003년에는 세 교회가 함께 ‘양림교회 100년사’를 펴냈다. 지난해엔 120주년을 함께 기념했고 교회 간 교류를 넘어 지역 상권 및 지자체와의 협력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조성용 예장합동 양림교회 목사는 “지금은 다투거나 경쟁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시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함께 일하게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힘이 빠지는 순간, 다투기보다는 손을 잡게 되는 경험. 내가 찬양 인도 중 첫 음을 놓쳤을 때 회중의 목소리가 더 커졌던 것처럼 양림동에서도 약함이 연대를 불러냈다.

한국교회 역시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 교세는 줄고 신뢰는 흔들리고 청년들은 떠난다. 외부의 시선도 차갑다. 우리는 흔히 이 시간을 ‘위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쩌면 교회가 다시 갱신될 수 있는 자리는 여기일지도 모른다. 성장기에는 서로를 경쟁자로 보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지탱해 줄 동료로 보게 되는 시기. 약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시선이다. 그렇게 보면 약함은 실패가 아니다. ‘죽어야 승리하는’ 역설적인 하나님의 방식이 그 자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광주=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