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독재자 마두로의 ‘이매진’

입력 2025-11-20 00:40

1989년 12월 20일 미국이 ‘베트남전 이후 최대 군사작전’이라는 파나마 침공을 단행했다. 코카인 밀반입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노리에가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무력진압이 어려워진 미군은 시끄러운 로큰롤 음악을 꺼내 들었다. 오페라 음악을 좋아하고 록 음악을 싫어하는 노리에가의 특성을 노렸다. 더 클래시, 반 헤일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의 강렬한 고음 노래가 24시간 확성기에서 쏟아졌다. 노리에가가 열흘여 만에 투항했다.

음악은 심리전의 일환으로 쓰인다. 특히 냉전 시대에 자유와 인간의지를 강조하는 록 음악은 서방의 단골 선전 메뉴였다. 그 중 으뜸은 비틀스 곡들이다. 흥겨운 멜로디, 서정적 가사들이 철의 장막 속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비틀스의 ‘캔트 바이 미 러브(Can’t Buy Me Love)’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 등을 몰래 들으며 자유와 사랑을 갈망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최근 지지자들과 함께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불러 화제다. 이매진은 베트남 전쟁 당시 세계 평화와 사랑을 기원한 대표적 반전(反戰)곡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마약 조직 격퇴를 명분으로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 전단을 카리브해에 진입시키는 등 전운이 감돌자 나온 대응이었다. ‘미군 침략에 맞선 평화 지도자’ 이미지를 노린 듯하다.

주권국가에 무력을 위협하는 트럼프 행동이 지나친 건 맞다 해도 마두로에 동정어린 시선도 찾기 어렵다. 마두로는 입법·사법부, 언론, 군 등을 장악하며 13년째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다. 통제 경제로 수천%의 초인플레이션을 야기해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마약 거래에 마두로가 연관됐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자가 이매진을 흥얼거리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쯤되니 트럼프의 선곡이 뭐가 될지도 궁금하다. 36년 전 효과를 본 록 음악일까 본인의 최애곡인 디스코 음악 ‘YMCA’일까.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