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국립공원은 전북 정읍시의 내장산뿐 아니라 전남 장성군의 백암산(白巖山·722m)과 입암산도 품고 있다. 고지도와 옛 문헌에도 내장산과 함께 백암산이 기록돼 있고 16세기 ‘동람도’에는 두 산이 나란히 표시돼 있다. 상왕봉, 백학봉, 사자봉 등 기암 봉우리를 거느린 산세가 웅장하고 멋스럽다. 내장산의 단풍이 유명하지만 백암산의 아기단풍은 가을 단풍의 ‘백미’로 통한다.
장성군 북하면 백암산 입구 주차장에서 누각 쌍계루(雙溪樓)까지 이르는 1.5㎞ 길은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600년 된 갈참나무, 단풍나무, 비자나무가 가지를 맞대 터널을 만들고 봄이면 황홀하게 피는 벚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천하 절경을 이룬다.
이어 만나는 쌍계루는 정자 자체도 멋지지만 정자가 품은 경치가 환상적이다. 백암산 학바위(백학봉)를 등지고 연못을 꿰찬 모습이 장관이다. 고려시대 처음 세워진 쌍계루는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었다. 1370년 큰비로 무너졌다가 1377년에 복구됐다.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가 기문을 남겼다. 1950년 6·25전쟁 때 소실됐으나 1986년 현재의 건물이 건립됐다. 누각 안에는 180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저명한 유학자들이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적은 것이다.
운문암과 천진암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쌍계루 앞에서 연못을 이룬다. 이 연못에 비친 쌍계루와 백학봉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실화다. 물가에 자리 잡은 700여년 수령의 이팝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연못 둑은 사진가들의 주요 출사지이자 관광객의 인증샷 명소다.
쌍계루에서 왼쪽 계곡을 끼고 오르면 약사암 방향에 비자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이곳 백학봉 입구 초입이 바로 한반도 내륙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 비자나무숲이다. 명승 백학봉으로 향하는 길은 붉게 물든 단풍 속에 갈지(之)자형 오르막으로 제법 가파르다. 쉬엄쉬엄 걸어도 금세 땀이 난다. 숨을 몰아쉬고 약사암 전망대에 오르면 새빨간 단풍나무 사이로 백양사 일대가 발아래 펼쳐진다. 약사암 위에는 신비의 샘 영천수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천굴 북쪽 작은 틈에서 솟아 나오는 샘이 있다. 비가 오나 가무나 한결같다’고 기록돼 있다. 샘물은 심장병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찾는 이가 제법 많다.
그 꼭대기 봉우리가 흰 학이 날아가는 형상의 백학봉이다. 가는 길이 ‘계단 지옥’이다. 백암산 등산로 중 가장 힘겨운 구간으로 꼽힌다. 힘겹게 올라선 정상은 멀리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명성에 비해 실망을 안겨준다. 정상 비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이곳에서 멀리 주봉인 상왕봉이 시야에 잡힌다. 여기서 상왕봉까지는 2.1㎞.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이라 부담이 없다. 상왕봉에 서면 장성호와 멀리 지리산, 무등산, 서해 줄포나루까지 한눈에 잡힌다.
상왕봉 북쪽에 있는 장성입암산성(사적 제384호)은 삼한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 길이 약 15㎞, 높이 3m로, 남문과 북문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장성은 옐로시티로 불린다. 가을철 노란 물결의 중심은 은행나무다. 대표적인 나무가 필암서원에 있다. 호남의 대표적 서원으로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를 기리는 서원이다. 입구에는 신성한 장소임을 알리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장성 황룡강 상류 황미르랜드에도 은행나무 숲이 있다. 황미르교를 건너 우측으로 향하면 만날 수 있다. 이곳 은행나무들은 독특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나무들은 1980년대 장성군 동화면에 식재됐던 가로수다. 식재 초기에는 병충해에 강하고 가을마다 샛노랗게 거리를 장식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나무가 자라나며, 열매로 인한 악취가 마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뿌리가 보도블록을 밀어내고 인근 가옥 및 주택 담벼락을 파손시키는 등 재산 피해도 유발했다. 참다못한 동화면 주민들은 나무를 제거해 줄 것을 장성군에 요청했다.
군은 전담반을 구성해 자체 회의와 면밀한 현장 조사를 거쳤다. 그 결과 황룡강 황미르랜드 기슭에 이식하기로 했다.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면서 황룡강에 새로운 볼거리도 만들 수 있는 묘안이었다.
장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