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휴전으론 불안해”… 세계는 ‘희토류 탈중국’에 사활

입력 2025-11-20 00:07
미·중 관세전쟁에서 중국이 희토류를 지렛대로 삼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에서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희토류는 주기율표 원자번호 57번 란타넘(La)에서 71번 루테튬(Lu)까지 15개 원소, 21번 스칸듐(Sc)과 39번 이트륨(Y)을 포함한 17개 원소를 일컫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미·중 관세전쟁으로 불거진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조치가 1년 미뤄졌지만 희토류를 둘러싼 공급망 리스크는 여전히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보호무역주의, 반중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어 양국 간 마찰이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일 “최근 미국과 중국의 합의는 휴전은 맞지만 종전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지지층의 보호무역 성향을 의식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완전한 화해가 쉽지 않다”며 “중국의 희토류·핵심광물 수출 통제는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카드”라고 설명했다.

협상 구조의 불안정성은 미국 측 공식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미국과 중국이 추수감사절(11월 27일)까지 광물 협정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면서도 “중국이 협정을 거부하면 미국은 다양한 대응 수단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통상 변수에 따라 희토류 갈등이 즉각 재점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희토류가 미·중 관계의 핵심 뇌관으로 꼽히는 배경엔 중국의 압도적인 희토류 점유율이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공개한 ‘2025 광물자원 시장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희토류 생산량 39만t 중 중국 생산량은 27만t으로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2023년(24만t)에 이은 1위다.


특히 정제·분리를 기준으로 한 중국의 점유율은 90% 이상까지 치솟는다. 북미 지역 매장량은 지난해 기준 미국 360만t, 캐나다 1400만t 등으로 많지만 희토류 생산 비중은 미국이 약 11%, 캐나다는 사실상 0%에 불과하다. 이들 지역의 상업적 채굴·정제 인프라가 제한적이란 의미다. 브라질, 러시아, 베트남 등도 매장량은 많지만 생산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희토류 수요가 크게 늘어 중국 편중 현상은 강화되는 추세다. 전기차, 풍력터빈, 배터리·스마트폰 등 주요 제조업은 물론 정밀 유도무기·레이더·위성 시스템 등 군수 분야에서도 희토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희토류를 원료로 한 고성능 자석·광학재료 사용량도 늘고 있다.

중국은 높은 자국 의존도를 무기로 희토류를 사실상 ‘전략자산’으로 규정하며 공급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3년 갈륨·게르마늄에 수출허가제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7종의 중희토류 원소를, 지난달 9일에는 희토류 관련 기술·부품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며 통제 범위를 빠르게 확대해왔다. 수출허가제는 희토류와 관련 소재·기술을 해외로 반출하기 전 중국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각국은 이런 ‘단기 휴전, 장기 리스크’ 속에서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희토류 공급망에서 18개월 내 ‘탈(脫)중국’하는 것을 목표로 일본·호주·캐나다 등과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다. 텍사스·테네시에는 정제·분리 시설과 네오디뮴과 같은 영구 자석 생산라인도 확충 중이다. 미국 국방수권법(NDAA)과 에너지부(DOE)의 희토류 재활용 기술 프로그램 역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은 전략원자재법(CRMA)을 통해 2030년까지 제3국의 핵심광물 의존도를 65%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채굴·정제·재활용을 일정 비율 이상 역내에서 수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된 광산과 정제 시설에는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투자를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최근 스웨덴 북부 키루나 지역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희토류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역내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다. 그 외 남미·아프리카 국가들과 장기 공급 협정을 체결하며 공급선 다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막대한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들은 정제·가공 시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가공 허브’로 전환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호주는 대표 기업 라이너스를 중심으로 서호주 마운트웰드 광산에서 채굴한 광물을 말레이시아와 호주 내 정제시설에서 가공하는 투트랙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텍사스에 신규 정제공장을 짓는 등 중국을 우회하는 독자 공급망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캐나다 역시 풍부한 희토류 매장량을 바탕으로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핵심광물의 ‘북미 생산·가공’을 의무화하면서 캐나다산 광물이 미국 기업의 우선 조달 대상으로 떠오른 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캐나다는 엄격한 ‘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ESG)’를 앞세워 중국 중심 공급망과 차별화를 꾀하고 정제·재활용 등 중·하류 공정을 자국 내에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희토류 공급망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대체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미국·EU·일본은 ‘탈(脫)희토류 자석’ 개발을 국가 전략과제로 지정하고 철·질소·코발트 기반의 대체 자석 소재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폐배터리·폐자석 등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재활용 기술을 고도화해 새로운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USGS는 보고서에서 “희토류는 지각 내에는 풍부하지만 채굴 가능한 농도로 존재하는 지역은 제한적”이라며 재활용과 순환경제 구축이 장기적으로 핵심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