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인플루엔자)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소아청소년과 병원을 예약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독감이 예년보다 일찍 유행한 데다 소아청소년과 병원 감소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진료에 차질을 빚는 모습이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A소아청소년과 대기실은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환자들 상당수는 어린이들이었다. 대기실 공간이 부족해 병원 밖 계단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간호사 김모씨는 “오늘은 진료 신청이 오전에 마감됐다”며 “11월 들어 독감 환자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급증했다”고 말했다.
진료 예약을 하려다가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도 많았다. 세 살 딸을 데리고 온 황모(32)씨는 “며칠 전부터 아이가 기침, 콧물 증상이 심해지고 미열도 있어서 병원을 찾았다”며 “아이 친구도 독감에 걸렸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독감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근 B소아청소년과에도 환자와 보호자 10여명이 초조한 표정으로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진료실 내부에는 주사를 맞고 우는 어린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간호사는 “진료 예약은 오전은 다 찼다. 오후 2시 이후에 오라”고 말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진료 예약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한 이용자는 “어제 진료 예약에 실패한 뒤 오늘 간신히 예약했다”며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다니는 소아청소년과는 어제 환자만 500명이 넘었다”고 적었다.
독감은 한동안 확산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11월 2~8일 기준 독감 환자 수가 최근 10년 같은 기간 대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질병청은 “특히 7~12세가 독감 발생률이 가장 높고 독감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며 “유행 확산으로부터 고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접종 등을 지속적으로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독감 환자 급증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감소 현상을 도드라지게 했다고 진단했다. 진료 예약이 갈수록 어려워진 배경에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을 기피하는 대신 이른바 돈 되는 의료 분야를 선택하는 현상이 심화한 여파라는 분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소아청소년과는 2227곳에서 2175곳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피부과는 1325곳에서 1512곳으로 늘었다. 이지혁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과거에는 1년에 200여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배출됐지만 최근에는 50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개원 소아청소년과는 진료 특성상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진료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어 수익성 악화로 폐업하는 병원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경진 이정헌 기자 ykj@kmib.co.kr